[사설]온당치 못한 이회창씨의 말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0시 52분


신한국당 李會昌(이회창)상임고문이 과거정치를 「더러운 정쟁(政爭)」이라고 단정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이씨가 어떤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유력한 차기 대선(大選)후보중 한사람이 그런 과격한 말을 한 것부터가 온당치 않다. 그의 이른바 「춘천 발언」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내부에서조차 민감하게 반응, 새로운 논란거리가 된 것도 모양이 안좋기는 마찬가지다. 이씨는 다른 대선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검증받지 않은 인물」이라고 공격당한 것을 반박하기 위해 과거정치를 전면 부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그의 발언은 도(度)가 지나쳤고 정치현실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씨는 강원대 특강에서 『더러운 정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판의 경험을 거쳐야 정치적 검증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도착적 심리상태』라는 말을 했다. 자신을 정치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측을 「도착적 심리상태」에 빠진 것으로 규정, 비판의 수용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언어가 매우 무책임하고 저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이씨처럼 상대를 도착(倒錯)으로까지 몰아세운 적은 없었다. 물론 우리의 정치사가 상당부분 정쟁으로 얼룩졌고 정당사(政黨史)가 험난했던것은 사실이다. 권위주의체제에 영합하여 야당노릇을 못한 정당도 있었다. 여당과 야당이 합당하여 빈축을 산적도 있었다. 야당이 분열하여 국민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한 세력이 현정치권에 있는 것도 사실이며 기성 정치인이라 해서 모두 한묶음으로 매도될 수도 없는 것이다. 암울했던 이른바 5공시절을 살았던 사람치고 나만이 그 과거의 어둠에서 단절됐고 결백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할 수 없다. 설령 이씨 주장처럼 상대측의 인신공격에 대한 단순한 경고성 메시지라 하더라도 더욱 말을 다듬어 쓰는 노력을 했어야 옳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이씨의 발언여파로 이른바 대선주자간 경쟁이 조기 점화(點火)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라살림의 규모를 결정할 예산국회가 열려있고 개혁의 마무리 순서랄 수 있는 제도개선 문제가 여야간 쟁점으로 부각된 시점에 대선경쟁부터 불을 댕기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볼 문제다. 어쨌든 이번 이씨 발언파문은 정치인들의 언어구사능력에 또한번 의문을 제기했다. 이씨의 발언이 그렇다고 해서 당장 야당측이 「천안삼거리 수양버들」이니 「역대정권의 줄타기 명수」 등으로 받아치는 것도 민망한 일이며 그들 또한 저질의 정치언어를 쓰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정치인들은 좀더 논리적으로 말하고 상대를 높이면서도 자기 할 말은 다하는 정치언어의 훈련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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