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목숨 잃은 주차시비

  • 입력 1996년 11월 25일 20시 22분


도시의 인심이 이렇게까지 각박해지다니 비참하기만 하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우리의 도시생활엔 공동체란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낮 서울 수유동의 주택가 골목에서 이웃끼리 주차시비끝에 20대가 50대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도시민의 심성(心性)이 왜 이리 삭막하고 야박해졌는가. 날로 급증하는 차량에 비해 주차공간이 너무 좁다는 현상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주차사정이 나쁘더라도 양보와 타협, 지혜와 도덕이라는 미덕으로 극단적 충돌은 피할줄 알아야 인간이다. 주차를 둘러싸고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황이 되면 이미 그 사회는 공동체라 할 수 없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때문에 인간성을 잃어간다면 문명의 노예이지 문화인이 아니다. 운전자치고 주택가 골목이나 음식점 상가앞 등에서 주차시비에 휘말려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걸핏하면 욕설이고 멱살을 잡아 민망할 때가 허다하다. 조금씩만 양보하면 좁은 공간에서도 싸우지 않고 타협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가령 자기집 앞이라고 하루종일 남의 차를 댈 수 없게 방해물을 갖다놓는 대신 자기 차가 나가 있는 동안에는 일정시간 주차를 허용할 수도 있다. 또 이웃 음식점끼리 손님들의 주차공간을 함께 쓰는 신사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 자기집 자기가게앞이라고 남의 주차를 무조건 막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땅은 시유지 국유지 등 공공용지이기 때문이다. 이웃끼리 마찰없이 공동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짜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차전쟁으로 목숨까지 잃어서야 이웃사촌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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