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日王 방한」의 명분과 실리

  • 입력 1996년 11월 11일 20시 20분


2002년 월드컵이 한일공동개최로 결정되자 일본 언론들은 대부분 개회식과 결승전 장소결정 등 기술적으로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표현을 썼다.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할 기회」란 우리 신문들의 호방한 제목과는 온도차가 상당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실무위에서 대회명칭이 「코리아―저팬」으로, 개막전은 한국, 결승전은 일본으로 매듭지어진 후 일본은 실리를 챙겼다는 데 만족하는 듯한 분위기다. 鄭夢準축구협회장이 『대회명칭에 한국이 앞서지 않으면 귀국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는 보도에 의아해하는 일본인도 있었다. 낙관적이고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 풍토와 실무적이며 실리를 중시하는 일본적 사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최근 암중모색되고 있는 일왕(日王)방한문제를 놓고도 비슷한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정부가 『94년 金泳三대통령 방일 때 일왕초청의사를 전달한 만큼 월드컵개막 이전에 와도 문제될 게 없다』(청와대 관계자)는 입장인 반면 일본 궁내청과 외무성 등은 「분위기 성숙」과 「신변안전문제」 등 신중론을 되풀이한다. 이같은 일본측 입장에는 사실 과거사문제에 관해 「통석(痛惜)의 염(念)」(90년 盧泰愚대통령 방일시)을 넘는 사죄의사 표명을 해야한다는 부담이 깔려 있다. 우익의 반발은 물론 보상문제에 미칠 현실적인 영향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궁정외교의 최대과제」, 나아가 과거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닫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향한 전기를 마련하려는 방한이라면 결단은 분명히 일본 몫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월드컵 공동개최가 상대국의 특성을 인정하고 장점을 배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당위론 차원에서도 일본의 흔쾌함을 기대한다.<이동관=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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