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4년 만에 재등장한 ‘디지털 교도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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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성범죄자 신상 공개로 응징에 나섰던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는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일던 당시 개설됐다. 협박에 시달리다 성착취물을 찍게 된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고 숨어 지내며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 또는 구매한 범죄자들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다. 도대체 법은 어디 있느냐는 여론이 들끓었고 이를 계기로 등장한 것이 디지털 교도소다.

▷디지털 교도소는 무고하게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나자 폐쇄됐다. 그런데 4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부산 유튜버 살인사건 피의자, 여자 친구를 살해한 의대생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추가 제보를 받는다고 한다.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인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를 위로하겠다고 주장하지만 댓글을 통해 피해자의 신상이 유포되는 등 이미 그 부작용이 크다.

▷요즘 온라인에선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가 넘쳐난다. 피해자는 보호하지 못한 채 가해자에게만 관대하다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양분 삼아 확산되고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등 언론에 보도된 범죄자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한 일도 있었지만, 소액 사기범을 추적하거나 불륜 배우자와 그 상대를 찾아다니며 낙인을 찍기도 한다. 주차 악당이나 난폭 운전자 등도 쉽게 마녀재판에 오른다.

▷법이 주먹보다 멀고, 느린 건 인간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범죄 사실을 돌다리 두드리듯 검증해야 억울한 누명을 쓰는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에서 악성 민원 학부모의 신상이 공개되자 상호만 같은 다른 가게가 망할 뻔했다. 즉각적인 심판과 응징은 속은 후련하겠지만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사적 제재가 돈벌이가 되면서 양산되는 측면이 있다. 최근 마약 운전으로 행인을 친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 가해자에게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3억 원을 챙긴 유튜버가 구속됐다. 4년 전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암호화폐로 후원을 받았다. 공익을 앞세웠던 그는 사실 성범죄에 연루된 마약 사범이었다.

▷교도소는 형량을 채우면 나올 수 있지만,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되면 영원히 갇히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묻지 마 범죄로 인생이 무너진 피해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싶다. 국민 법 감정과 거리가 있는 낡은 양형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사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자의적 기준에 따른 신상 공개는 의도와 달리 2차 피해를 부를 수 있는 범죄 행위다. 개인적인 단죄가 범람하면 우리 사회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디지털 교도소#성범죄자#신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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