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192)

  • 입력 1996년 10월 22일 20시 05분


제5화 철 없는 사랑〈31〉 누르 알 딘의 말을 들은 이브라힘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당신만큼 꾀 많은 분은 보지 못했고, 이런 재미있는 이 야기는 들은 적이 없소』 그리하여 이브라힘은 누르 알 딘이 시키는 대로 했다. 당나귀를 타고 시내로 내려 가 마침 술을 사러 술집으로 향하고 있는 대장장이 하심을 붙들고 말했다. 『하심, 자네에게 이 디르함을 줄 테니 술을 사서 이 당나귀 등에다 비끄러매어 줄 수 있겠나?』 그러자 대장장이 하심은 신앙심 깊기로 소문난 이브라힘 노인의 그 너무나도 엉뚱 한 부탁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노인장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거 참 뜻밖의 일인 걸요』 그러자 이브라힘 노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오해할 건 없네. 나는 다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사람의 젊은이를 위 하여 심부름을 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을 뿐이라네』 그제서야 대장장이 하심은 술집으로 가 술을 사 들고 와 당나귀 등에다 그것을 비 끄러매어 주었다. 이브라힘 노인이 돌아오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누르 알 딘이었다. 그는 탄성을 지르며 노인에게 치사하고나서 말했다. 『저희 두 사람은 이제 노인장 손에 달렸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노인장 께서는 저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건 당연합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갖다 주 십시오』 누르 알 딘이 이렇게 말하자 노인은 몹시 유쾌해져서 말했다. 『알았소, 젊은 분, 자 그럼 따라오시오』 이렇게 말한 노인은 누르 알 딘을 데리고 임금을 위해 마련된 식료품 저장실로 갔 다. 『자, 여기가 바로 식료실이니 들어오셔서 무엇이고 마음대로 가지시오. 어느 것 하나 값나가지 않는 게 없습니다.』 누르 알 딘이 식료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거기에는 갖가지 진귀한 보석을 박은 금 은 수정의 그릇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보고 누르 알 딘은 넋을 잃고 기뻐하였다. 그는 곧 필요한 물건들을 갖추어 들고 나왔다. 그리고 목이 긴 병에 술을 따랐다. 이브라힘 노인은 과일과 꽃과 향기로운 풀들을 가지고 뒤따라왔다. 그러나 술상이 마련되자 이브라힘 노인은 두 사람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르 알 딘과 아니스 알 쟈리스는 술을 나누며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취기가 돌 자 두 사람의 볼은 빨개지고 눈은 영양의 눈처럼 흥이 어려 있었다. 약간 헝클어진 머리들을 한 두 젊은이의 얼굴은 따라서 더욱 귀엽고 아름다웠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브라힘 노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말 을 했다. 『이브라힘아! 너는 왜 혼자 이렇게 떨어져 앉아 있는 거냐? 왜 저 젊은이들과 어 울리지 못하는 거냐? 달님처럼 고운 저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앞으로 다 시 없을지도 모르는 일일 텐데 말이다』 <글 :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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