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경기 이천 마장면에 「문인공부방」

  • 입력 1996년 10월 18일 22시 10분


「權基太기자」 「벽계학교」. 작가 이문열씨의 장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에 나오는 서원의 별명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고향 경북 영양에 빗대 암포 면이라 이름짓고 그곳에 고향에 실재하는 「석계서원」을 옮겨다 놓았다. 석계서원의 석계(石溪)는 작가의 이씨집안을 영양땅에 자리잡게 한 조상 李時明을 이른다. 어린 시절 석계공의 이야기에 가슴 설레며 큰 작가는 요즘 자신의 집필실 이 있는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현대식 서원」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제자로 받아들일 문학청년들, 집필실이 없는 젊은 작가들의 공부방겸 집필실로 삼 기 위해서다. 묵을 방들과 강당 도서관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고 작가의 책 5천여권 과 복사기 신문자료검색기 등도 들여놓는다. 『제자들은 내후년부터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고졸자는 5년, 대졸자는 3년 가량 묵게 할겁니다. 자기소개서와 습작품들을 보고 며칠간 같이 먹고 자며 고를 생각입 니다. 하지만 문학청년들을 결코 제 아류나 분파가 되게 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그는 「문청」들에게 소설기법을 가르칠 생각은 없다. 동서양의 고전 읽기를 권유 , 편협한 전문지식인이 되기보다는 폭넓은 인문주의자가 되도록 할 생각이다. 논객 들과 교수들을 초청해서 강의도 마련할 예정. 이미 이곳에 머무르며 작품지도를 받 아 작가반열에 오른 이도 엄창석씨 외에 몇명된다. 「서원」의 부지는 84년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온 후 헐값에 사둔 것. 10억여원을 웃도는 건축비로 90년 이후 인세수입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래도 빚을 끌어들여야 할 지경이다. 이미 이천의 이씨 집필실에는 많은 젊은 문인들이 드나들어 급식용 식판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이 입들을 건사하는 가마솥의 이름은 이 속에서 목숨을 잃을 축생들을 기린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목욕하는 가마솥」이란 뜻의 「귀천욕부(歸天浴釜)」 다. 「이씨서당」의 「학습 분위기」는 조선조 영양땅의 「석계서원」 분위기처럼 무 겁지만은 않을 듯. 두주불사형에 소설가협회 기전에서 우승하기도 한 바둑광인 그의 성격 덕택이다. 거기다 종종 혈기넘치는 문학청년들의 「생각 못한 도전」도 받을 것이고. 『문학청년들을 격려하는 사회적 장치가 너무 없어요. 굳이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와서 묵으면서 여러 체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렵니다』 이불보퉁이와 헌 책꾸러미를 싸매고 밀양 안동 김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습작기를 보냈던 젊은 날의 편력이 그를 서원짓기로 끌어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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