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임찬규는 시즌 초반 승리조, 패전조를 가리지 않고 선발의 위기 때마다 뒤를 받치는 구원 투수로 뛰었다. 그러다 LG 선발진에 ‘구멍’이 나자 다시 선발 투수로 변신해 팀 승리를 돕고 있다. LG 제공
“저까지 구멍이 되면 제 인생도 구멍 난다.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올 시즌 임찬규(31)는 LG 마운드에 구멍이 생길 때마다 호출을 받는 ‘땜질전문’이다. 시작부터 무사만루 위기였다. 2023 프로야구 개막 후 두 번째 경기였던 2일 수원 KT전에서 선발 김윤식(23)이 2회말부터 흔들리자 염경엽 LG 감독은 ‘롱릴리프’ 임찬규를 마운드에 올렸다. 임찬규는 공 9개로 위기를 지워버렸다.
이후 선발 자원이던 이민호(22)가 팔꿈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염 감독은 16일 두산전부터 임찬규에게 선발 한 자리를 맡겼다. 선발 첫 등판에서 3과 3분의 1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왔던 임찬규는 22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공 78개로 5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지난해까지 선발로 뛰었던 임찬규는 “팀에서 필요한 역할이 곧 내 역할이다. 선발이 필요하면 선발로 등판하고, 중간으로 나가면 선발 뒤에서 끌어주고, 필승조로 나가면 버티면 된다”면서 “‘다시 선발 한 자리를 찾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다. 감독, 코치님께서 믿고 등판시켜 주시는 이 보직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찬규의 시즌 목표도 ‘제2의 차우찬’이다. 차우찬(36·롯데) 역시 ‘삼성 왕조 시절’ 팀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 마운드에 오르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2017년 LG로 이적한 뒤 지난해까지 6년 동안 임찬규와 한솥밥을 먹었다.
임찬규는 “우찬 형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잘 버텨내고 건강하기만 하면 언제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응원해 주더라”면서 “‘우찬 형, 타지에서 고생하시는데 서울 오시면 순댓국 한 그릇 같이하고 싶어요. 롯데 경기 때 유강남(31) 말고 형 만나러 갈게요. 사랑합니다’라고 꼭 적어 달라”며 웃었다.
유강남은 임찬규와 LG 입단 동기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에는 임찬규(1라운드 지명)가 유강남(7라운드 지명)보다 더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종료 후 유강남은 총액 80억 원에 롯데와 FA 계약을 맺은 반면 임찬규는 아예 FA 신청도 하지 않았다. FA 자격 요건은 갖췄지만 6승 11패, 평균자책점 5.04라는 지난해 성적에 만족할 수 없어 ‘재수’를 선택했다.
임찬규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당당히 LG에 남고 싶었다. 지난해에는 10승도 규정이닝도 달성하고 싶어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운드에서 공 하나씩 던지는 것뿐이더라. 지난해는 다 잊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미래는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임찬규는 원래 최고 시속 152km를 기록한 강속구 투수였다. 그러나 혹사에 시달린 끝에 스피드를 잃어버렸다. 올해 속구 평균 시속은 139km로 리그 평균(시속 143km)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임찬규는 이번 시즌 속구를 던져 장타를 얻어맞은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 임찬규가 현재까지 던진 공 290개 가운데 41%(119개)가 속구다.
임찬규의 ‘느린 속구’가 여전히 위력을 발하는 건 ‘터널링 효과’ 덕분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처음에는 모든 구종이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간다. 그러다 홈플레이트에 가까워지면서 궤적이 갈린다. 따라서 초기 궤적이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또 비슷하게 보이는 구간이 길면 길수록 좋은 공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야구계에서는 이 구간을 ‘피치 터널’이라고 부른다.
임찬규는 “모든 구종이 비슷하게 보이도록 터널링에 신경을 쓴다. 지난해까지는 속구를 기준으로 변화구를 던지는 타이밍을 생각했다. 올해는 변화구를 기반으로 속구를 언제 던질지 생각하며 던진다. 그랬더니 투구가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도 우승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100번은 했다”면서 “올해는 꼭 팀에 더 많이 공헌하는 투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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