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상식’ 비트는 장정석 감독, ‘리틀 김경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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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31일 1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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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장정석 감독. 스포츠동아DB
넥센 장정석 감독. 스포츠동아DB
3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벌어진 SK 와이번스-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에선 투수교체와 관련해 야구상식을 벗어난 두 차례 장면이 나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두 넥센 장정석(45) 감독의 작품이었다.

가장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결정은 불안한 1점차 리드가 지속되던 8회초 안우진을 내리고 이보근을 올린 것이다. 7회초 등판한 안우진은 13구만 던진 상태였다. 넥센 불펜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인 안우진이 적어도 2이닝 이상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됐기에 장 감독의 선택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정규시즌 같은 불펜 운영에 ‘혹시 4차전을 염두에 두고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 만했는데, 경기 후 승장 인터뷰에서 장 감독은 “믿음”이라는 만사형통의 표현으로 슬기롭게 넘어갔다. 패하면 시즌이 끝나는 경기에서 ‘대범하게도’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음이 엿보인다.

또 하나 ‘문제의 장면’은 6회초 1사 만루서 선발 한현희를 좌완 오주원으로 바꿨을 때다. 좌타자인 박정권의 타석에서 오주원 카드를 내민 것이라 언뜻 순리에 맞는 듯하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SK가 오른손 대타를 내세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주원에게 올 시즌 3타수 2안타 1홈런으로 강했던 우타자 정의윤이 벤치에 대기하고 있었다. 비록 정의윤이 ‘5(3루수)~4(2루수)~3(1루수)’ 병살에 그쳐 결과적으로 오주원 투입은 성공했지만, 달리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1차전 끝내기홈런의 주인공 박정권이지만, 이날은 타격감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앞선 두 차례 타석에선 한현희에게 모두 삼진을 당했다. 이럴 경우 한현희를 그대로 밀고가거나, 교체한다면 가장 강한 불펜투수를 내세우게 마련이다. 일리미네이션 게임(elimination game·지면 탈락이 확정되는 경기)이라 이런 경우 경기 중반이라도 마무리투수를 올릴 수 있다.

김경문 전 감독. 스포츠동아DB
김경문 전 감독. 스포츠동아DB

이날 장 감독의 파격은 누군가를 연상케 했다. 김경문(60) 전 감독이다. 김 전 감독은 두산 베어스 사령탑 시절인 2010년 삼성과의 PO 3차전 때 6-8로 뒤진 연장 11회말 무사 1·2루서 고영민에게 보내기번트 대신 강공을 지시했다. 연장 11회초 동일한 상황에서 삼성은 정석대로 보내기번트를 대고 2점을 뽑은 상태였다. 고영민의 볼넷, 임재철의 2타점 2루타, 손시헌의 끝내기안타가 이어져 9-8로 승리한 뒤 김 전 감독은 “번트를 대 2·3루가 돼 2점이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은 2008베이징올림픽 때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도 상대 왼손투수에 왼손대타를 투입하는 기상천외한 용병술을 선보인 바 있다.

감독 2년차, 그리고 처음 맞이하는 포스트시즌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PO를 연이어 통과하고 PO에 오른 장정석 감독. 그는 어쩌면 타고난 승부사인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 적중한 결과로만 보자면 KBO리그 역사에 길게 한 획을 남길 만한 또 한 명의 감독이 등장한 느낌이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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