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터뷰]입양아 출신 첫 태극마크 이미현 “친부모님 천천히 기다리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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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태극마크 달고 평창올림픽 마친 스키 슬로프스타일 이미현이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입양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태극마크 달고 평창올림픽 마친 스키 슬로프스타일 이미현이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키 슬로프스타일 국가대표 이미현(24·대한스키협회). 해외 입양아 출신인 그는 한국 국적을 회복해 태극마크를 달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다. 0.2점이 모자란 예선 13위에 그쳐, 12위까지 오르는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결선을 코앞에서 놓친 아쉬움에 관람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현은 점수가 발표된 뒤 실망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미소로 관중을 향해 인사했다. 아쉬움은 전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어요. 올림픽 첫 도전이었고 다 소중한 경험이잖아요. 물론 파이널에 못 가서 잠깐 슬프긴 했는데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이제 베이징에 가야죠.”

이미현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나는 여전히 에너지가 충만하다. 올림픽이 끝났다는 게 내 열정도 끝났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스키는 늘 타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현은 올림픽을 마치고도 한동안 평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창 패럴림픽에 어릴 적 동네 친구가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이미현은 1살 때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로 입양돼 한국 국가대표로 발탁되기 전까지 줄곧 필라델피아에서 살았다.)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마이크 마이너(미국·파라 스노보드)가 패럴림픽에 출전한다는 신문기사를 봤어요. 너무 반가워서 곧바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어요. ‘요 마이크, 나 너 기억해. 정말 축하해. 한국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알려줘, 내가 도와줄게!’라고요(웃음). 근데 진짜로 도와줄 일이 있었어요. 대회 기간에 마이너의 헬멧이 부서진 거예요. 전화를 걸어와 서울에서 헬멧 살 수 있는 곳 있냐고 묻더라고요. 열심히 인터넷 뒤져서 가게를 연결해줬어요.”

앞서 열린 보드크로스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던 마이너는 새 헬멧을 쓰고 나간 뱅크드 슬라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미현이 친구의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운 셈이다. 이미현은 “그래서 마이너한테 ‘헬멧 멋지다’라고 많이 놀렸다”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이미현은 4월 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할 생애 첫 프로야구 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는 롯데의 홈 개막 3연전 마지막 경기 시구자로 초청받았다. 롯데는 2015년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알게 된 친구 알렉스의 응원 팀이었다.

“알렉스랑 저는 둘 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다시 한국에 살고 있는 공통점이 있어 금방 친해졌어요. 알렉스가 한국의 남쪽지방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롯데 팬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롯데의 잠실 경기 때 유니폼 맞춰 입고 응원하러 자주 갔어요. 너무 신나는데 좀 떨려요. 야구는 아주 어렸을 때 말고 해본 적이 없거든요. 홈 플레이트까지는 공이 가야할 텐데….”

생후 2,3개월 즈음의 이미현.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국내에서 찍었다. 이미현 제공
생후 2,3개월 즈음의 이미현.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국내에서 찍었다. 이미현 제공

1살 때 동방사회복지회를 통해 미국 필라델피아 스키코치 부부에게 입양된 이미현은 3살 즈음부터 양부모에게 스키를 배웠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이런 저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미현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프리스타일 스키였다.

“기술을 하나 성공할 때마다 더 나은 기술을 하고픈 마음이 계속 생겨요. 새로운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의 짜릿한 기분을 끊을 수가 없어요. 워낙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서로 영상 찍어주고 스키타고 그런 일들이 저한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겨울이면 미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프리스타일 로컬 팀을 지도했고 일반 스키 강사는 물론 스키장 렌탈 숍 아르바이트도 했다. 스키장이 문을 닫는 여름에 오히려 본격적인 ‘극한알바’가 시작됐다.

“겨울에는 스키장 주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개념이었는데 여름에는 정말 ‘풀타임’으로 일했어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낮에는 수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맥도날드 야간알바를 한 적도 있어요. 수영장 일이 끝나면 1시간 쉬다 맥도날드에 갔고 새벽에 퇴근해 몇 시간 자고 다시 수영장에 가는 식이었어요. 그땐 잠을 거의 안 잤죠. 졸리지도 않았어요. 겨울에 스키를 타고 싶은 마음이 워낙 컸거든요.”

스키가 곧 삶이었던 이미현은 대한스키협회의 초대로 2015년 1월, 자신이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국적을 회복해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평창올림픽을 꿈꾸게 됐다. 2014년 소치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키 슬로프스타일 경기를 TV로 봤을 때만 해도 자신이 그 무대에 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미국 국가대표가 될 만큼의 실력은 안됐어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도 모두 열심히 노력하는데 전 모든 대회에 나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요. 그저 즐기면서 나갈 수 있는 대회만 한두 개 나가던 정도였어요. 그런데 한국이 저에게 기회를 줬어요. 미국의 부모님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지지해주셨고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미현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서 3일간 집중적으로 한국어 기본 자모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그는 “제가 생긴 건 완전 한국인이지만 말을 전혀 못했거든요. 특히 처음 사투리를 듣고는 완전 충격 받았어요.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라며 웃었다.(현재 이미현은 한국말 알아듣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말하기는 여전히 서툴다. 이 기사는 기자와 영어로 인터뷰한 것을 옮긴 것이다.)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이미현 선수의 어린시절

입양된 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미현의 출생지는 경남 진주다. 하지만 이미현은 아직 진주에 가본 적이 없다. 이미현은 “그간 운동하느라 마땅히 시간이 없기도 했고 누구랑 가야할 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가게 되겠죠. 서두르지는 않으려고요.”
평창 올림픽을 통해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던 이미현에게 올림픽이 끝난 뒤 자신이 아빠 같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나타났지만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현은 아직 경찰서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하지 않았다. 부모가 실종신고를 해놓은 경우 유전자 정보로 자식을 찾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이미현은 “부모님을 찾는 데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혹여나 이 기사를 읽게 될 지도 모르는 친부모를 향해 이미현은 이런 말을 전했다.

“동방사회복지회나 제 에이전시에 연락을 주시면 좋겠어요. 언제든지 괜찮아요. 지금부터 5년 뒤라도 괜찮아요. 혹 연락을 원치 않으신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새로운 가족이 있을 수도, 찾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23년 전 일이니까.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그것도 다 이해해요.”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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