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대통령 시구와 이승엽의 데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4일 05시 30분


삼성 이승엽. 동아일보DB
삼성 이승엽. 동아일보DB
이승엽(41)의 갈색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였다. KBO 400홈런, 한일통산 600홈런 등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한 없이 겸손하고 신중한 ‘국민타자’는 23년 전 자신의 프로 첫 경기에 대해 말하며 흥분했다. “대통령이 오셔서 시구를 하고 수많은 관중의 함성이 들리고. 얼마나 긴장했던지 한 경기 만에 체중이 4㎏이 줄었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진짜입니다.”

이승엽은 3일 프로야구선수로 잠실에서 두산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KBO의 역사가 되고 있는 다섯 번째 ‘이승엽 은퇴 투어’였다.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10분, 20분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인데 또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됐다”는 이승엽에게 잠실과 두산에 얽힌 특별한 추억을 물었다.

-아직 LG와 경기가 남아있지만 잠실 두산전은 이제 마지막이다. 잠실구장에는 어떤 추억이 있나?

“영원히 잊지 못한다. 지금도 생생하다. 프로 데뷔전이 잠실이었다(1995년 4월 15일 LG전 시즌 개막전). 대통령이 시구를 하셨다. 관중들의 함성도 엄청났다. ‘아, 프로가 이런 곳이구나’, ‘촌놈이 성공했다. 이런 곳에서 경기를 뛰고’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경기 내내 의자에 단 1초도 앉아 있지 못했다. 9회 대타로 나가서 안타를 쳤고 그 덕분에 그 다음날 스타팅이었다. 프로 선수로 첫 발을 내딛은 곳이 잠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체중계에 오르니 하루 만에 몸무게가 4㎏이 빠졌더라.”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구. 동아일보DB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구. 동아일보DB

이승엽은 9회초 류중일 전 감독의 대타로 출전해 LG 영구결번 투수 김용수 전 중앙대 감독을 상대로 중전 안타를 쳤다. 프로 첫 안타였다. 그날 경기는 야구를 사랑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구를 했다.

-잠실 첫 홈런도 궁금하다.

“사실 잠실은 홈런 타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곳이다. 경기장이 워낙 크다. 그러나 관중이 많고 열정적 응원이 있어서 행복하고 짜릿했다. 첫 홈런은 데뷔 시즌 OB 박철순 선배를 상대로 때린 것 같다(기억은 정확했다. 7월 23일 OB전 6번 1루수로 출전해 3회초 박철순을 상대로 3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렇게 큰 구장에서 홈런을 칠 수 있구나’ 그런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 이었다”

삼성 이승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삼성 이승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잠실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도 해봤고 준우승도 경험했다.

“잠실은 대구구장을 빼면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야구장이다. 그만큼 좋은 일이 많았다. 잠실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도 했고 또 잠실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했다. 우승은 감격적이었고 준우승은 패배라는 실패를 맛본 순간이었다. 그러나 실패가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2001년과 2015년, 14년 차이로 두 번 두산의 우승을 잠실에서 지켜봤다. 우승은 기쁨이 남고 준우승은 배움과 겸손이 남는 순간이었다. 두산이 지금도 그렇지만 야구를 참 잘했다.”

잠실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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