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마지막 목표는 3할 30홈런 100타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6일 03시 00분


‘아름다운 이별’ 준비하는 이승엽

“이 좋은 잔디와 땅도 올해가 마지막이네요.” 4일 사진 촬영을 위해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은 이승엽은 잔디까지 어루만지며 고별 무대를 앞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은퇴는 언제 해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깔끔하고 멋있게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 좋은 잔디와 땅도 올해가 마지막이네요.” 4일 사진 촬영을 위해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은 이승엽은 잔디까지 어루만지며 고별 무대를 앞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은퇴는 언제 해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깔끔하고 멋있게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말 행복합니다.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야구고요.”

 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삼성 이승엽(41)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이승엽은 2017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로 이미 공언한 터. 그렇지만 은퇴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 타격 훈련까지 마치고 기자와 마주한 이승엽은 “예전엔 야구 한번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탄산음료를 안 마셨다. 라면도 안 먹고, 김치도 물에 헹궈 먹었다. 하지만 이젠 다 먹고 즐긴다. 변하지 않은 건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다. 올해 못하면 다음엔 기회가 없다. 좀 더 열심히 달리겠다”고 했다.

 2017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슬픈 한 해로 남을지도 모른다. 20년 넘게 야구팬들을 웃고 울렸던 영원한 ‘국민 타자’ 이승엽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새해 첫날부터 야구장에 나와 땀을 흘리며 팬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 “마지막까지 100점이 목표”


 이승엽은 야구 선수로서 모든 걸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 8년을 포함해 작년까지 22시즌을 뛰면서 602개(한국 443개, 일본 159개)의 홈런을 쳤고,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우승 반지를 끼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도 결정적인 홈런포를 날렸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3할, 30홈런, 100타점”이라고 했다. 3할-30홈런-100타점은 수준급 거포의 상징이다. 이승엽은 “중심타자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라고 표현했다. 통산 성적으로 이를 이루는 걸 선수 생활의 마지막 목표로 잡았다.

 올해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15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그는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이 0.304나 된다. 평균 30홈런을 맞추려면 올해 7개의 홈런만 치면 된다. 타점은 89개가 남았다. 이승엽은 “시험으로 치면 89점만 맞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100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 예의 바르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이승엽의 이름 앞에는 ‘국민 타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1990년대 말 한 스포츠 기자가 붙인 이 별명이 언젠가부터 그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야구만 잘해서 얻은 별명이 아니다.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성을 지녔기에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민 타자’로 불려 왔다.

 이런 칭찬에 대해 이승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릴 적 스승인 박흥식 코치(현 KIA)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야구를 잘하기 시작했을 무렵 스프링캠프 훈련 중 제가 성의 없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요. 그날 숙소에 있는데 박 코치님이 편지를 한 통 주고 가시더라고요.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엔 ‘큰 선수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인성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어요. 부끄러웠습니다.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그때부터 이승엽은 ‘모범 선수’가 됐다. 항상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고, 운동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국민 타자’라는 별명이 생긴 후에는 더 그랬다. 이승엽은 “처음엔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별명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별명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사실 야구를 잘하고 못하는 건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야구장에서의 예절과 매너는 뜻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팬들과의 ‘아름다운 이별’

 40세이던 지난해 그는 타율 0.303에 27홈런, 118타점을 기록했다. 은퇴하기엔 여전히 기량이 아깝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저 역시 시원섭섭하죠.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고요. 하지만 예전부터 등 떠밀려 은퇴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은퇴 얘기도 제가 먼저 구단에 꺼냈고요.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요즘 ‘은퇴 투어’가 유행이다. 야구팬에게 사랑받았던 스타 선수들이 방문 경기를 갔을 때 경기 전 방문 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은퇴 기념품을 선물하기도 한다. 작년 보스턴에서 은퇴했던 데이비드 오티즈와 몇 해 전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이상 전 뉴욕 양키스) 등이 은퇴 투어를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은퇴 투어’의 첫 주인공으로 이승엽이 가장 유력하다.

 이승엽은 “제가 먼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면서도 “(상대팀에서)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다. 경기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에서 10초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간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시즌 매 경기가 소중하기만 할 그는 특별 고별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홈런을 치고 들어온 뒤 어린이 팬들에게 끼었던 장갑을 주는 세리머니를 생각하고 있어요. 평소 안 하던 짓이지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니까… 하하.” 
 
대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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