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무너진 공든 탑…‘삼성 DNA’ 정체성 잃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7월 7일 05시 45분


요즘 “삼성이 예전 삼성이 아니다” 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이는 단순히 야구를 못 해서가 아니라 삼성 야구단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으로 들린다. 스포츠동아DB
요즘 “삼성이 예전 삼성이 아니다” 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이는 단순히 야구를 못 해서가 아니라 삼성 야구단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으로 들린다. 스포츠동아DB
순위보다 더 큰 걱정거리

모기업 인수·원정도박 대처과정서 혼돈
힘 잃은 프런트 행동에 선수들까지 흔들


# 공자는 ‘다움’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면 세상이 조화로울 것’이라는 의미다. 이 생각을 야구판에 적용하면 최근 5년간 KBO리그는 ‘팍스 삼성 라이온즈(삼성이 지배한 세상)’의 구조였다. 삼성은 강하면서도 그 강력함에 대한 야구계의 반감은 최소화했다. 편협함으로 천지사방에 적을 만들었던 김성근 시절 SK와 결정적 차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야구판에서 삼성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이것이다. “삼성이 예전 삼성이 아니다.” 단순히 야구를 못해서 나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삼성 야구단의 정체성이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으로 받아들여야할 상황이다.

# 아마 삼성의 균열은 윤성환·안지만·임창용 해외 원정도박 의혹에 대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단순히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쳐서가 아니다. 삼성이 사안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과정은 확실히 예전 삼성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야구단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의사결정 자체가 느려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삼성이 선제적 대응을 하기 어려웠을 고충은 짐작된다. 그러나 개막이 한참 지나서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어정쩡한 사과를 시킨 것은 실기였다. 명분은 늦은 시점 탓에 희석됐고, 추후 성적마저 떨어져 실리도 잃었다. 안지만과 윤성환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던지지만 삼성은 그 이상의 가치들을 이미 잃었다.

# 얼마 전 만난 야구계 관계자는 통분의 감정을 드러냈다. “삼성 선수들이 메리트가 폐지된 데 대한 반발로 시즌 중 구단이 주도하는 마케팅, 홍보 활동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어떻게 구단이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 있나? 성적만 내면 그만인가?” 삼성 안현호 단장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 팬 사인회나 홈경기 승리 직후 응원단상에서의 히어로 인터뷰 등을 안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팀 성적이 워낙 나빠서 그랬던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서 박탈감이 없지는 않은 것으로 듣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구단 활동에 보이콧을 한 적은 없다”고 안 단장은 해명했다. 올해 삼성은 새 야구장으로 옮겼다. 그 어느 때보다 팬 친화적 마케팅이 절실한데 안 단장은 성적이 안 나니까 모든 것을 자제하고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 맥락이라면 삼성 팬들은 팀 성적이 날 때까지 야구단의 팬 서비스가 부재해도 참아야 한다. 삼성이라고 늘 이길 순 없다. 그러나 당장의 순위가 문제가 아니라 삼성의 정신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처량함마저 든다. 야구단의 정체성은 프런트가 지키는 것이다. 제일기획으로 모기업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무너지면 그동안 삼성이 쌓아놓은 것은 뭐가 되는가? ‘삼성 우승은 돈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소리는 그 누구보다 삼성 프런트와 선수단의 자긍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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