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으로 일관…돌아온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8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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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가까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18번 홀(파5)에서 가볍게 툭 쳐 넣는 탭인 파로 우승을 확정지었을 때였다. 허공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내지르던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27·KB금융그룹)였다.

세계 랭킹 2위 박인비는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세계 1위 리디아 고(18), 세계 3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와 맞대결을 펼쳤다. 리디아 고는 3주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루이스는 올 시즌 개막 후 준우승 2회에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세계 최강을 다투는 톱3의 우승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박인비였다.

8일 싱가포르의 센토사골프장 세라퐁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2타차 1위로 출발한 박인비는 2타를 줄여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나흘 연속 1위 선두를 지킨 끝에 우승했다. 이번 대회 72홀 동안 보기는 단 1개도 없는 완벽한 우승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박인비의 뚝심 앞에 경쟁자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번번이 샷이 오른쪽으로 밀린 리디아 고는 2위(13언더파)로 마쳤다. 루이스는 공이 야자수에 올라가고, 연못에 빠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3위(11언더파)에 머물렀다.

박인비의 우승으로 한국(계) 선수들은 시즌 개막 후 5연승을 질주했다. 시즌 첫 승이자 통산 13승째를 거둔 박인비는 “노보기 플레이는 기억에 없는데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공동 7위로 마감했던 지난주 혼다 타일랜드 4라운드를 포함하면 5라운드 연속 노보기다.

박인비는 “이번 우승이 좋은 신호가 됐다. 앞으로 잘 풀릴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주로 여름 이후 우승을 신고했던 박인비는 슬로 스타터였다. 시즌 초반 우승은 2013년이 유일했는데 그 해에 박인비는 메이저 3승을 포함해 개인 최다인 시즌 6승을 거뒀다. 박인비는 응원을 온 할아버지와 부모님 등 가족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아빠랑 내기를 했는데 내가 버디를 할 때마다 500달러를 받고, 보기에는 1000달러를 드리기로 했다. 보너스를 챙기게 됐다. 여동생 앞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라 더 기쁘다.” 박인비는 이번에 보기 없이 버디만 15개를 했다.

박인비는 나흘 동안 그린 적중률이 91.7%에 이를 정도로 날카로운 아이언 샷 감각을 유지했다. 퍼트 감각도 살아났다. 박인비는 “퍼팅할 때 머리는 그대로 두고 눈동자로 스트로크 경로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변화를 줬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삼각구도를 그렸던 리디아 고와 루이스를 동시에 꺾으면서 한발 물러나 있던 ‘골프 여왕’의 자리를 되찾을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결혼 후 제2의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다.

한편 김효주(20·롯데)는 마지막 날 5타를 줄이며 공동 8위(8언더파)에 올라 투어 데뷔 2개 대회 만에 톱10에 진입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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