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PK선방 신화용 ‘분석 반 느낌 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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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7시 00분


포항이 전북을 잡고 올 시즌 FA컵 정상에 올랐다. 2년 연속 대회 제패와 함께 내년 AFC 챔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황선홍 감독(앞줄 왼쪽)과 이명주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포항이 전북을 잡고 올 시즌 FA컵 정상에 올랐다. 2년 연속 대회 제패와 함께 내년 AFC 챔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황선홍 감독(앞줄 왼쪽)과 이명주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 포항, FA컵 우승 뒷이야기

퇴장 당한 황선홍감독, 코치진에 원격지시
FA컵 승부차기 대비 선수들 매번 미리 연습
신화용 “5개 다 막겠다” 자신감 우승으로

“연장을 생각했고, 승부차기도 준비했다.”

2013 하나은행 FA컵 결승전을 앞둔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45)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포항이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홈 팀 전북 현대를 승부차기로 꺾고 대회 정상에 등극했다. 연장까지 스코어는 1-1이었고, 포항은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겼다. 우승 상금 2억 원. 포항 골키퍼 신화용(30)은 전북 1, 2번 키커 레오나르도-케빈의 슛을 막아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상금 300만 원).

포항은 실리와 명예, 역사까지 휩쓸었다. 가장 먼저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고, FA컵 최다 우승팀이 됐다. 통산 4회(1996, 2008, 2012, 2013). 특히 황 감독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으로 진짜 명장 반열에 올랐다. 포항은 21일 우승 카퍼레이드와 환영 리셉션을 열 계획이다.

반면 슛 횟수 19대5로 몰아치고도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전북은 심각한 후유증을 걱정할 처지다. 전북은 2011년 알 사드(카타르)와 AFC챔스리그 안방 결승에서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패한 전례가 있어 아픔은 배가 됐다.

● 명장 반열에 오른 황선홍 감독

황 감독에게 FA컵은 특별했다. 3번째 우승 도전이었다. 그동안 한 번 울었고, 한 번은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웃었다. 2010년 부산 아이파크를 결승에 올렸지만 안방에서 수원 삼성에 무릎을 꿇었다. 작년 포항을 이끌고 홈에서 경남FC를 눌렀다. 연장 종료 1분 전 박성호의 프리킥 결승골이 터졌다. 올해도 우승을 예감했다. 전반 24분 김승대의 첫 골이 터졌다. 9분 뒤 전북 김기희의 동점골이 아니었다면 최근 이어져온 결승전 ‘한 골 승부’ 흐름이 계속될 뻔 했다.

3년 전에는 패배로 마음이 아파서, 작년은 첫 우승의 감격으로 운 황 감독이다. 그러나 올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환히 웃었다. 그는 “처음 우승 때 힘겹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라 그런지 작년보다 낫다”고 했다.

황 감독은 연장 14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 당했다. 그러나 본인 퇴장만 제외하면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강철 코치를 통해 원격 지시를 했다. 전·후반, 연장까지 120분이 흐른 뒤 황 감독의 손에는 승부차기 순번이 적힌 종이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이 통했다. 포항 제자들은 동요하지 않았고, 스승에 값진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황 감독에게는 직감이 있었다. 승부차기였다. 포항은 FA컵 승부를 앞둘 때마다 페널티킥(PK) 연습을 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이 PK를 차도록 했다. 하지만 경기 전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마지막 훈련을 할 때는 킥 연습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정규 시간 내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유일하게 킥 연습을 한 황지수는 정작 후반 42분 교체돼 찰 수 없었다. 황 감독은 “작년 우승한 뒤부터 팀이 좋아졌다. 올해도 좋은 발판을 마련했다”며 정규리그 우승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 승부차기 느낌 알던 신화용

“심장 떨린다.” “다리가 덜덜 거려….”

연장 종료 휘슬이 울린 뒤 포항 벤치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였다. 준비는 철저했어도 ‘11m 룰렛’의 잔인한 게임을 앞두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 골키퍼 신화용이 한 마디 던졌다. “5개 다 막겠다”며 당당히 필드로 나갔다. 코치들도 지시를 따로 내리지 않았다. 국내 최고 수준의 반사 신경을 믿었다.

신화용은 심리전부터 이겼다. 전북 용병들이 킥을 위해 걸어올 때마다 자신이 직접 공을 건넸다. 그리곤 심판이 골문 앞으로 향하라고 할 때까지 상대 키커의 앞을 서성거렸다. 적중했다. 리듬을 빼앗긴 전북 1, 2번 키커의 킥 방향을 정확히 읽었다. 2개를 선방하자 포항의 1번 키커 이명주의 실축에도 불구하고 포항 선수단에는 승리 기운이 맴돌았다. 관중석의 황 감독도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딱 절반만 상대 분석을 했다. 나머지는 내 느낌에 맡겼다”는 신화용의 코멘트 속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신화용은 성남 일화와 대회 16강에서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상대 킥 3개를 막아 4-2 승리를 진두지휘한 바 있다.

전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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