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Story]암도 못말린 투혼 최태웅의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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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일 07시 00분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세터 최태웅이 V리그 최초로 세트 1만개를 새 역사를 썼다. 림프암 투병을 극복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9시즌 만에 이룬 쾌거다. 스포츠동아DB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세터 최태웅이 V리그 최초로 세트 1만개를 새 역사를 썼다. 림프암 투병을 극복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9시즌 만에 이룬 쾌거다. 스포츠동아DB
서른 일곱 악바리, V리그 첫 ‘세트 1만개’ 돌파
방사선 치료 받으면서도 운동…2년전 완전극복
“배구는 내 인생의 희망…은퇴? 아직 생각 없다”


“배구는 언제나 내 인생의 희망이다.”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의 세터 최태웅(37)은 지난달 23일 인천도원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에서 V리그 최초로 세트 1만개를 돌파했다. 세트란 ‘SET UP’을 간략하게 부르는 용어로, 공격수가 득점을 올릴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연결된 공격이 성공될 때만 점수로 기록된다. 최태웅의 기록은 2005년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한 이후 9시즌 만에 이룬 대기록이다. 꾸준한 경기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다. 역대 한국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고 있는 러시앤캐시 김호철 감독은 “9시즌 만에 세트 1만개를 달성한 것은 그만큼 세트 성공률도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배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이 림프암 역경을 딛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프로배구 V리그 사상 첫 1만 세트를 달성해 감동을 주고 있다.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최태웅이 림프암 역경을 딛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프로배구 V리그 사상 첫 1만 세트를 달성해 감동을 주고 있다.스포츠동아DB


1만 세트 최태웅 신화는 ‘분석의 힘’

왼팔 림프암 역경 딛고 ‘인간승리’

방사선 치료 병행하며 일궈낸 대기록
“높은 세트 성공률? 좋은 리시브 덕분”

상대팀은 물론 같은팀 선수까지 분석
“예전엔 내 위주…이젠 공격수에 맞춰”

○암을 이기고 달성한 기록

최태웅의 세트 1만개 달성이 더욱 값진 이유는 암 투병을 하면서 세운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9월 림프암(왼팔 부위) 발병 사실을 알게 됐지만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새벽에 치료를 받고 오전 훈련에 참가할 정도로 지독하게 노력했다. 방사선 치료는 2011년 4월에 끝났지만 현재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체크를 받고 있다. 암 투병이 아니었다면 기록 달성에 걸린 시간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최태웅은 “세트 1만개 달성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드디어 달성하게 됐다. 우리 나이로 올해로 서른여덟인데, 그만큼 오랜 시간 운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과 최초로 이 기록을 썼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하다. 그만큼의 세트를 성공시킬 수 있도록 리시브를 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실함이 체력·경기력 유지의 비결

사실 최태웅은 세터로서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코트에 들어서면 젊은 세터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경기력을 발휘한다. 비결은 철저한 개인 운동에 있다.

“틈 날 때마다 개인 운동을 꾸준히 한다. 아무래도 30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컨디션이 처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개인 운동이 많은 보탬이 됐다.”

그는 전성기를 지났지만 노련함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전성기는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였던 것 같다. 지금은 힘보다는 노련함으로 배구를 한다. 경기 경험이 많아서인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투입돼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같은 팀 선수는 물론 상대팀 선수에 대한 꼼꼼한 분석도 최태웅의 힘이다. 그가 전성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공격수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토스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의사소통을 한다곤 해도 사실 내 위주의 플레이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물어본다. 제각기 다른 공격수들의 성격과 기호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플레이가 잘 맞지 않을 때는 함께 비디오를 보며 연구해 그 선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지도자로 대성할 자질

최태웅의 향후 목표는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현재는 은퇴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팀이 필요로 하는 한 선수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만 언젠가 선수로서 더 이상 뛸 수 없는 시점이 오면 외국에 나가서 배구를 더 배우고 견문을 넓힌 뒤 이를 한국배구에 접목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최태웅이 지도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김호철 감독은 “세터들은 기본적으로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본인의 성실성과 동료들을 리드해 나갈 줄 아는 성격을 고려해 보면 지도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최태웅은 배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줬다. “배구는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선수를 그만 둔 뒤에도 내 삶은 지도자를 준비하며 배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래서 배구는 내게 언제나 희망이다.”

최태웅은?

▲생년월일 : 1976년 4월 9일
▲신체조건 : 185cm 80kg
▲포지션 : 세터
▲학력사항 : 인하부중-인하부고-한양대
▲프로경력 : 삼성화재(1999∼2010), 현대캐피탈(2010∼)
▲수상내역 : V리그 세터상(2008, 2009)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트위터 @seren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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