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51) 신임 대한축구협회장의 공약을 보면 협회 내부의 인적쇄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이해는 간다. 협회 내부사정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개혁을 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임기가 본격 시작됐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정 회장이 기치로 내건 축구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인적쇄신은 당면 과제다.
○부회장단-이사진 바꿔야
개혁 1순위는 협회 부회장단이다.
조중연 전 회장은 재임기간 내내 인의 장막을 쳤다. 조 전 회장의 최측근이던 전임 부회장들의 책임도 크다. 회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쓴 소리를 해야 하는데 ‘입의 혀’처럼만 기능했다. 한 축구인은 “모 부회장이 조 전 회장에게 보고하는 장면을 우연찮게 봤는데 벌벌 떨면서 의견 한 마디를 못 내더라. 둘 다 축구인 선배지만 실망이 정말 컸다”고 쓴 소리를 했다.
더구나 조 회장은 재선 불출마를 선언한 임기 막바지, 일부 부회장과 사이까지 틀어졌다. 부회장이 회장을 험담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축구를 이끄는 협회 최고위층의 현주소가 이랬다.
4년 전 조 전 회장을 찍었고, 이번에 정몽규 회장을 지지했던 골수 여권 대의원조차 “조 전 회장은 공과 사를 구분 못한 채 부회장단을 인선했고, 부회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에 자리에 연연해 협회를 망쳐 놨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사진도 대폭 바꿔야 한다. 정관상 이사회는 협회 최고 집행기관이지만 조 전 회장 시절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고위 임원들의 눈치를 보며 거수기 역할만 했다. 모 이사는 “회장단이 올린 안건을 형식적으로 승인만 했다”며 자조했다.
정 회장의 인적쇄신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정 회장은 당선 과정에서 현대가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 회장은 “세습이라면 선거도 없이 당선돼야 하는데 앞뒤가 맞지 않다”며 반박했지만 그가 진짜 정몽준(MJ) 명예회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분명히 있다.
부회장단과 이사진을 개편해 정 회장이 주체적으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한 축구인은 “진짜 MJ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 부회장, 이사 선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의원 총회에서는 부회장과 이사 인선을 전적으로 정 회장에게 위임했다. 이제 공은 정 회장에게 넘어 왔다. 모든 것은 그의 의지에 달렸다. 정 회장은 당선 소감에서 소통과 화합을 약속했다. 사실 이는 어려운 게 아니다.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잘 쓰면 대통합은 저절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