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은퇴 회견 “공격수 움직임 잘 포착하려고 달리는 車 번호 외우곤 했는데…
훌륭한 후배 양성하고 싶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언제나 잔디 냄새와 팬들의 함성이 가득한 그라운드에 있을 것입니다.”
‘거미손’ 이운재(39)가 골키퍼 장갑을 벗었다. 그는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지금 떠나는 것이 팬들에게 가장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운재는 “어린 시절 진흙과 모래가 섞인 운동장에서 힘들게 공을 찼고, 공격수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지나가는 차의 번호를 외우는 연습을 했던 기억들이 스쳐간다”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지만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은퇴를 결심하고 일주일 내내 울었습니다. 그런데 ‘선수’로 불리는 마지막 자리에서도 울면 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눈물을 꾹 참았어요.”
1996년 수원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2년 전남에서 은퇴할 때까지 K리그 410경기에 출전해 425골을 실점했고 2008년에는 골키퍼 최초로 K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뤄낸 그는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 132경기에서 114골을 실점했다. 17년간 대표팀의 골문을 든든히 지킨 그는 ‘태극 수문장’으로 불리며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팀과 대표팀 모두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던 그였기에 많은 선후배가 은퇴를 아쉬워했다. 이운재의 최고 라이벌이었던 김병지(42·경남)는 “운재야, 너무 고생 많았다. 네가 가진 능력을 잘 살려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이운재는 “나이가 어린 제가 먼저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선배는 후배들을 이끌고 한국 축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화답했다. 이운재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의 골문을 지키는 정성룡(27·수원)은 직접 기자회견장을 찾아 “한국 축구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셨던 선배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운재는 후배들에게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조언을 남겼다.
현역 생활을 마감한 이운재는 지도자로서의 ‘새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전남에 있을 당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며 조금씩 제2의 축구인생을 준비해온 그는 “기회가 된다면 꼭 훌륭한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곳에서 팬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운재가 걸어온 길
△1973년 4월 26일 청주 출생 △청주 청남초-청주 대성중-청주상고-경희대-프로축구
수원-상무-수원-전남 △포지션=골키퍼 △키 182cm, 몸무게 90kg △별명=‘태극 수문장’ ‘거미손’ △A매치 통산 132경기
출전 114실점, 프로축구 통산 410경기 출전 425실점 △A매치 데뷔=1994년 3월 5일 미국전(0-1 패), 프로
데뷔=1996년 수원 △A매치 은퇴=2010년 8월 11일 나이지리아전(2-1 승), 프로 은퇴=2012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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