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전북 골키퍼 최은성의 끝없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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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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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잊혀질 순 있지만 최선 다한 선수는 영원”

K리그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최은성. 전북 선수단 숙소 인근에서 이야기 도중 지나가던 강아지가 최은성의 품에 안겼다. 자신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이 ‘수호’라는 점을 떠올린 그는 즉석에서 이 강아지를 ‘천황’이라 불렀다. 골키퍼로서 ‘수호천황’이 되려는 그의 의지가 보인다. 전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K리그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최은성. 전북 선수단 숙소 인근에서 이야기 도중 지나가던 강아지가 최은성의 품에 안겼다. 자신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이 ‘수호’라는 점을 떠올린 그는 즉석에서 이 강아지를 ‘천황’이라 불렀다. 골키퍼로서 ‘수호천황’이 되려는 그의 의지가 보인다. 전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고의 선수’는 언젠가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41세의 노장 골키퍼 최은성(전북). 그는 1997년 K리그 대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뒤 줄곧 ‘빡빡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자를 것도 없는 머리를 다시 한번 밀며 새로운 다짐을 한다.

최은성은 자신이 골키퍼를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축구부 시절 아버님께서 감독님에게 ‘필드 플레이어는 많이 다치니까 다치지 않게 골키퍼를 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신 것이 계기가 돼 줄곧 골문을 지키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부상에 관한 아픈 기억이 있다. 대전 소속이었던 2001년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 포항의 FA컵 결승전. 그는 상대 선수와 부닥쳐 그라운드에서 의식을 잃었다. 최은성은 “‘잠들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잠을 꾹 참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전은 1-0으로 이겨 우승했지만 그는 자신의 프로 첫 우승을 병원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은성의 간절한 꿈은 우승의 순간을 그라운드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많은 팬들에게 최은성의 존재를 알린 계기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어 태극마크를 단 그는 “2002년 전에는 내가 누군지 사람들이 몰랐을 거다”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최은성은 이운재(전남), 김병지(경남)에 이어 대표팀의 ‘넘버3’ 골키퍼로 활약하며 주전 선수들의 스파링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했다. ‘다른 골키퍼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묻자 최은성은 손사래를 치며 “내가 출전하게 된다는 것은 이운재, 김병지가 부상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선수로서 출전에 대한 욕심이 없지는 않지만 주전이 부상당해 팀의 전력이 약화되는 것은 더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기회는 오기 마련인데 주전이 아닌 것에 불평만 하다 보면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대전으로 돌아온 그는 맹활약을 펼쳤다. 스타 선수가 없는 대전이었지만 최은성은 대전의 골문을 든든히 지켰다. 그는 대전에서 리그 464경기(604실점)에 출장했는데 이는 프로축구 사상 단일팀 최다 출장기록이다. 2009년 대전은 “최은성의 등번호 21번을 그가 은퇴한 뒤 21년 동안 결번으로 남겨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15년간 대전에서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 최은성은 올해 초 구단과의 연봉 협상과정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떠밀리듯 결별했다. 그는 “단순히 연봉 문제는 아니다. 구단과 선수 간의 동업자 정신이 상실돼 아쉬웠다. 구단 위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위에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섭섭했다”며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전은 내가 프로생활을 시작하고 지금의 최은성을 키워낸 구단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의 기로에 섰던 최은성에게 손을 내민 것은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 전북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며 놀랐다는 최은성은 전북에 연봉을 ‘백지 위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벼랑 끝에 있던 나를 잡아준 것이 전북이었어요. 목숨을 살려줬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전북으로의 이적이 결정되자 많은 동료들의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한솥밥을 먹게 된 이동국은 “형님이 오셨으니 이제 뒷문은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경기하겠습니다”라며 그를 반겼고, ‘절친’인 이운재(전남)는 “축하합니다. 목숨을 걸고 뛰십시오”라며 최은성을 독려했다. 시즌 초반 전북은 수비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우승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베테랑 최은성이 골문을 지킨 4월 22일 포항전을 시작으로 수비진이 안정을 찾으며 전반기를 리그 2위로 마쳤다. 이철근 전북 단장은 “최은성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비진을 잘 조율해주고 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어 기쁘다”며 뿌듯해했다.

최은성은 요즘 자신을 ‘나이든 신인 골키퍼’라고 부른다. 전북에서의 첫 시즌은 최은성에게 ‘새 출발’인 동시에 은퇴를 앞둔 ‘마지막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라는 게 알면 알수록 더 배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력은 다 잊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 꿈인 리그 우승을 이뤄내겠다”며 활짝 웃었다.

전주=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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