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기립박수한 ‘진정한 챔피언’ 황우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3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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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대표에서 ‘맨발의 청춘’으로 돌아온 정진화(왼쪽)와 황우진이 22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교정에서 맨발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1년여간 동고동락했지만 정진화가 졸업 후 울산시청에 입단하면서 떨어져 지내게 됐다. 두 선수는 당분간 각자의 길을 걷게 됐지만 런던에서 보여준 뜨거운 우정만큼은 영원할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올림픽 대표에서 ‘맨발의 청춘’으로 돌아온 정진화(왼쪽)와 황우진이 22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교정에서 맨발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1년여간 동고동락했지만 정진화가 졸업 후 울산시청에 입단하면서 떨어져 지내게 됐다. 두 선수는 당분간 각자의 길을 걷게 됐지만 런던에서 보여준 뜨거운 우정만큼은 영원할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올림픽 정신을 빛낸 선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올림픽 선수단을 치하하는 라디오 연설에서 근대5종 대표 황우진(22)에게 보낸 찬사다. 황우진은 11일 런던 올림픽 근대5종 승마 경기에서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낙마해 왼쪽 허벅지를 크게 다쳤지만 마지막 복합경기까지 쩔뚝이며 완주해 감동을 안겼다. 황우진이 결승선에 들어와 함께 출전했던 정진화(23)의 품에 안기자 영국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22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황우진과 정진화를 만나 당시 얘기를 들었다.

● 런던을 울린 진정한 올림피언


근대5종 승마는 경기 시작 20분 전 무작위로 말을 추첨해 배정한다. 황우진은 '쉬어워터 오스카'란 이름의 말을 타게 됐다. 황우진에 앞서 이 말을 탔던 중국 선수가 연습 도중 낙마해 경기를 포기할 만큼 난폭한 말이었다. 말을 바꾸려면 연습 시작 전에 얘기를 해야 하는데 황우진은 나중에야 중국 선수의 낙마 사실을 알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말이 가만있으면 자꾸 앞발을 들더라. 20분 연습하다가도 몇 번 넘어질 뻔했다. 출발 직전 관중한테 인사하려고 잠깐 말을 멈췄는데 벌써 들썩거렸다. 결국 출발 신호 직후 말이 바로 앞발을 들더라. 처음 두 번까진 잘 견뎠는데 세 번째 때 뒤로 넘어지면서 왼쪽 다리가 말에 깔렸다."

경기 진행요원들은 사고 직후 황우진이 경기를 못 뛸 줄 알고 말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이를 본 황우진은 아픈 다리를 끌고 황급히 말에 올라탔다.

"생애 첫 올림픽을 이렇게 망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승마를 마치고 복합경기(육상+사격)를 준비하는데 전광판에 내 이름이 없는 걸 발견했다. 진행요원이 내가 당연히 경기를 포기할 줄 알고 이름을 지웠더라. 남경욱 총감독님께 무조건 뛰겠다고 했다."

황우진은 절뚝이는 발로 육상 3km와 사격까지 마쳤다. 합계 기록은 36명 중 34위. 중간에 경기를 포기한 선수 2명을 빼면 사실상 꼴찌다.

하지만 그는 스타가 됐다. 지하철에서 만난 영국인이 그의 사진이 실린 현지 신문을 들고 "이게 너 아니냐"라고 묻기도 했다. 귀국 후 청와대 만찬에선 이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서 손연재 김연경 기성용 등 대스타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 최고 성적 거둔 정진화, 하지만…

정진화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근대5종사상 최고 성적 타이인 11위에 올랐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김미섭(11위) 이후 첫 쾌거다. 하지만 사상 첫 메달을 기대할 만큼 각종 대회에서 성적이 좋았던 정진화는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분위기에 눌려 첫 경기인 펜싱에서 중위권에 그친 게 한이다.

"올림픽 분위기에 압도당해 지나치게 긴장했다. 펜싱 경기가 열린 코퍼 박스에서는 모든 장비가 최신이었고 관중까지 가득했다. 근대5종하면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올해 로마세계선수권에서도 천막으로 만든 펜싱장에서 시합했는데…. 역시 올림픽은 스케일이 달랐다. 그러다보니 없던 부담감도 생기더라."

정진화가 없었다면 황우진의 완주도 없었다. 정진화는 펜싱에서 하위권으로 처져 상심한 황우진을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 덕에 다음 경기인 수영에선 나란히 4위(정진화)와 5위(황우진)를 차지했다. 정진화는 마지막 복합경기를 마친 후에도 결승선을 떠나지 않고 황우진을 기다렸다. 황우진이 쩔뚝이며 들어오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안아준 것도 정진화였다.

● 4년 후 하고 싶은 것? 잠!

황우진과 정진화는 4년 후 실력과 경험을 겸비할 20대 중반이 된다. 근대5종 선수의 최전성기 나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간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황우진은 엉뚱하게 "잠을 잘 자고 싶다"고 했다. 경기 전날 너무 긴장돼서 오전 4시 반에 잠들어 1시간 반밖에 못 잤기 때문이다. 그는 "오후 11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자야 된다는 강박감에 계속 잠이 안 오더라. 머릿속으로 양을 400마리 넘게 셌다. 잠을 잘 잔 대회에선 늘 성적이 좋았는데 다음 올림픽에 나간다면 대회 전날 푹 자고 싶다"며 웃었다. 정진화는 "이번엔 성적 부담이 심해 올림픽을 즐기지 못했는데 다음번엔 꼭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두 남자는 '올림픽 대표'라는 명예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맨발의 청춘'으로 돌아갔다. 한국체육대학교 4학년인 황우진은 다음달 열리는 전국근대5종선수권 출전 준비에 한창이다. 귀국 직후 한체대를 졸업한 정진화는 고향인 울산시청에 입단해 10월 전국체육대회에 나선다. 맨발의 청춘의 브라질 정복 작전이 시작됐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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