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보다 빛난 ‘땀 방울’… LG, 이유있는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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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신바람 야구 이끄는 김기태 감독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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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부터 카리스마로 유명했던 이 남자. 한 번 화가 나면 누구도 못 말릴 것 같은 ‘열혈남아’였다.

그런데 그는 기대를 저버렸다. 아직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만나면 항상 웃는 얼굴이다.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니 내가 할 말이 없네요”라는 게 고정 레퍼토리다. 올 시즌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고 있는 김기태 신임 감독(43·사진)이 그렇다.

‘덕장(德將), 지장(智將), 용장(勇將)…’. 세상에 많고 많은 장수 중 제일은 단연 ‘복장(福將)’이라는 게 프로야구판의 진리다. 해태와 삼성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통산 10번 우승을 차지한 김응룡 전 삼성 사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 감독은 지지리 복도 없다. 팀을 맡자마자 조인성(SK), 이택근(넥센), 송신영(한화) 등 주축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떠났다. 스프링캠프 도중에는 에이스 박현준과 김성현이 경기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전문가들은 LG를 올 시즌 꼴찌 0순위로 꼽았다. 10년 연속 4강 탈락도 기정사실화했다. 운을 타고났다는 김 전 사장도 ‘(선)동열이고 없고, (이)종범이도 없는’ 상황에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야구는 역시 알 수 없었다. LG는 8일 현재 13승 10패로 4위다. 선두 SK와는 0.5경기 차밖에 나지 않는다. 대체 LG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출귀몰한 용병술이라곤 말하기 힘들다. 신개념 4번 타자 정성훈이 ‘거포’로 거듭났고 톱타자 박용택 카드도 성공적이지만 야심 차게 추진했던 리즈의 마무리 투수 전환은 상처만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부분이 과거의 LG와 달라진 점이다. 예전엔 한 곳에 틈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졌지만 요즘은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틴다. 그것도 이처럼 단단한 잇몸이다. 리즈가 물러난 뒷문은 봉중근과 유원상 한희 등이 메우고 있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포수도 그렇다. 방출 선수 출신의 심광호와 2년차 신예 유강남이 마스크를 쓰지만 조인성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투수에선 ‘괴물’ 류현진(한화)을 이긴 최성훈과 이승우 등이 자리를 잡았다.

스타 선수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무명 선수들에겐 ‘기회의 땅’이 됐다. 김 감독은 공평하게 기회를 줬고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했다. 현재 LG는 누구든 열심히 하면 1군에 설 수 있는 팀이다. 오히려 스타가 없기에 최선을 다하는 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마흔 살이 넘은 류택현과 최동수도, 이제 갓 스무 살의 임찬규나 유강남도 실력에 따라 기회를 얻고 있다.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이런 팀워크를 만들어 낸 게 김 감독의 능력이다. 스스로 복을 만들어 낸 김 감독. 그를 바로 ‘신개념 복장(福將)’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야구#프로야구#LG트윈스#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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