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개명’ 바람이 불고 있다. 부상을 막거나 더 큰 꿈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선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롯데 외야수 손아섭은 2009년 시즌 직전 손광민에서 이름을 바꾼 뒤 지난해 타율 0.326에 15홈런 83타점으로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동아일보DB1990년대 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라”며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건 프로야구판도 마찬가지다. 최근 많은 선수들이 수십 년간 간직했던 이름을 바꾸고 있다.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법원의 개명(改名) 허가를 받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명 변경 신청을 한 선수가 6명이다. 2010년 이후 13명의 선수가 이름을 바꿨다. 얼마나 절실했기에 그들은 이름까지 바꾼 것일까.
○ 개명은 부상을 피하는 수단
1990년대 태평양과 LG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안병원(현 넥센 2군 재활코치)은 선수 생활 내내 지긋지긋한 부상과 싸워야 했다. 그는 당시 “이름에 ‘병원’이란 말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병원이란 이름 대신 ‘성용’이라고 불러 달라”고 선수단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부상은 최대의 적이다. 안병원처럼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피하기 위해 개명을 한다.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김남석은 최근 김재율(LG)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지난해 수비 도중 주자와 충돌해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는 “재활 도중 어머니의 권유로 개명을 신청했다. 재율은 ‘스스로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 아프지 않고 운동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 개명의 원조는 ‘김바위’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바꾼 선수는 MBC(현 LG)에서 뛰었던 김바위(현 SK 원정기록원)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용윤이었다. 같은 팀에 김용운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선수가 있어 이름을 바꿨다는 게 그동안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20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의 얘기는 달랐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께서 고향의 커다란 바위를 향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며 매일 정성껏 기도를 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일찌감치 ‘바우(바위의 사투리)’로 불렸다. 프로가 된 뒤 좀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바위’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김용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바위라는 단단한 이름으로 그는 10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 롯데는 ‘개명 천국’
개명을 통해 재미를 본 구단은 롯데다. 손아섭(전 손광민), 문규현(전 문재화), 박종윤(전 박승종) 등 3명의 주전 야수들이 모두 개명파다. 손아섭은 이름을 바꾼 뒤 2010년 타율 0.306을 치며 주전을 차지했고 지난해엔 타율 0.326에 15홈런 83타점으로 생애 첫 골든글러브까지 받았다. 2002년 입단과 함께 재화에서 규현으로 이름을 바꾼 문규현도 지난해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같은 해 개명한 박종윤도 이대호(일본 오릭스)가 떠난 1루수의 새 주인으로 유력하다. 프로야구가 ‘개명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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