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박주영과 이영표가 간과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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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레저부
이원홍 스포츠레저부
‘10년간 입영 연기 허가’를 받아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은 박주영(27·아스널)의 병역 기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18일 미국프로축구에서 뛰고 있는 축구스타 이영표(35·밴쿠버)의 “박주영 논란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언급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이 발언을 담은 골닷컴 기사가 게재되자 몇 시간 만에 4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이영표는 “박주영이 지금 당장 군대 가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주영이는 축구를 할 때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가장 많은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할 일이 없어서 군대 갔다는 말이냐” “축구가 벼슬이냐”는 등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와 함께 ‘국위 선양’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박주영은 입대 연기를 밝히면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선수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프로선수인 박주영은 ‘꾸준히, 치밀하게’ 자신의 영리활동을 추구하고 있는데 마치 국위 선양이 가장 큰 목표인 양 표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기력이 떨어진 박주영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을 떠나 그보다 한 수 아래인 벨기에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19일 알려졌다. 그러자 ‘해외에서의 활동도 미미한데 무슨 국위 선양이냐’는 비아냥거림이 곧바로 쏟아졌다.

이영표를 비롯해 일부 팬들은 박주영이 합법적으로 입영을 연기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단순히 절차상의 합법 여부가 아니라 전체 맥락을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팬들의 분노는 합법, 불법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역 문제의 형평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영은 그동안 입대를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어 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자 적극적으로 법의 빈틈을 찾아냈다. 팬들의 분노는 비단 박주영 개인뿐만 아니라 힘 있고 돈 있고 머리 좋은 사람들은 누구나 병역을 회피할 수 있다는 식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박주영이 해외에서 수십억 원을 벌고 있을 때 천안함과 연평도에서는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박주영의 한 골이 전방에서 숨져간 김 병장의 목숨보다 귀중할 수는 없다.

박주영이 언젠가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는데 웬 난리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그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박주영은 지난해 10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병역 의무는 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8월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았다.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박주영 국가대표 반대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박주영과 이영표는 개인의 행복추구권만 강조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사람들은 축구만으로 살지 않는다. 축구장 밖에는 더 포괄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규칙과 덕목들이 있다. 그것은 공정성과 진정성이다.

이원홍 스포츠레저부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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