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행복하게 한 짜릿한 장면 남기고… ‘반지의 제왕’ 안정환 은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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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2002년인데 몸은 2012년” 눈물
“축구화 벗지만 축구위해 뛰겠다” 숙연

2002년 6월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 한일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전반 4분. 안정환은 천금같은 페널티킥을 얻어 골키퍼와 마주섰다. 연일 돌풍을 일으키던 한국이 안정적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세계적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은 안정환이 날린 오른발 슛을 쳐냈다. 이탈리아라는 거함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순간을 허망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당시 그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물만 안 났지 경기 내내 울면서 뛰었다”고 했다. 그러나 페널티킥 실축은 그를 누구보다 극적인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전주곡이었다. 1 대 1 동점이던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은 이영표의 패스를 백헤딩 슛으로 넣어 숨 막히는 경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순간의 주인공이 된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안정환(36)은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은퇴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위함이었을까. “오늘이 선수 안정환으로 불리는 마지막 날입니다”라고 말문을 열면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눈물.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눈물에 현장을 찾은 팬들도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마음은 2002년인데 몸은 2012년이었다”라는 말과 함께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작별을 고한 그는 그동안 겪은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고 말했다.

○ 월드컵

안정환은 “월드컵 무대를 세 번이나 밟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수로서 모든 것을 누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4강 진출을 이뤄낸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영광스러운 대회’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뒤 결혼반지에 키스하는 독특한 골 세리머니로 ‘반지의 제왕’으로도 불렸다. 그는 월드컵과 특별한 인연이 많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후반 역전 결승골을 뽑아 한국 축구의 원정 월드컵 첫 승을 이끌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 저니맨

1998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한 그는 한국이 낳은 가장 화려한 스타 중 한 명이었지만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팀을 옮겨 다녔다.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무대에서 뛰었다. 그는 올해 중국 다롄 스더에서 국내에 복귀해 새 길을 찾다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 기자회견이 끝난 뒤 그의 팬클럽 ‘러브테리’ 회원들은 안정환에게 다양한 유니폼을 입은 그의 인형을 선물했다. 그는 “해외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많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일 월드컵 직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진출에 실패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전 소속팀이었던 부산 아이콘스(현 아이파크)와 그가 월드컵 이전에 몸담았던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와의 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취업비자 문제 등이 얽혀 빅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당시 계약서를 아직도 갖고 있다”며 깊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박지성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 가족…

그는 은퇴 후 자신을 위해 희생해 온 아내 이혜원 씨의 화장품 사업을 돕고 유소년 축구 등 축구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족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제 그 가족에게 더 큰 사랑을 바치려 한다. 유명한 그의 반지는 부인이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동영상=‘눈물의 은퇴’ 안정환 “마음은 2002년, 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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