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허재 넘는다” 강동희의 3전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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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3일 07시 00분


그는 만년 2인자였다. 황금콤비였지만, 사실 선수로서는 ‘허재’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리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제2의 승부다. 이제 타깃은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는 KCC 허재 감독이다.스포츠동아DB
그는 만년 2인자였다. 황금콤비였지만, 사실 선수로서는 ‘허재’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리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제2의 승부다. 이제 타깃은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는 KCC 허재 감독이다.스포츠동아DB
83년 쌍용기·90년 농구대잔치서 패
2003시즌 PO 세번째 대결서도 눈물
강 감독 “한번은 넘어선다” 독한 각오


“이번에는 한 번 넘어서야죠.”

원주 동부 강동희(45) 감독은 현역시절 ‘코트의 마법사’로 불리며, 한국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군림했다. 2년 선배인 전주 KCC 허재(46) 감독과는 중앙대∼기아자동차에서 함께 뒤며 80∼90년대 한국농구를 호령했다. 소문난 우애 덕분에 함께 주류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트 안에서는 잠시 우정도 접어둔다. 강 감독에 따르면, 허 감독과 파이널에서 맞붙는 것은 이번이 3번째다.

● 1983년 고교농구 쌍용기 결승

첫 번째는 무려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동희는 송도고 1학년, 허재는 무적의 용산고 3학년이었다. 중학교 시절 2년 간 농구를 그만뒀던 강동희는 전국무대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반면 허재는 이미 농구천재 소리를 들으며, 고교무대를 평정하던 시절이었다. 둘은 쌍용기 결승에서 맞붙었다. 강동희는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뛰었지만, 결국 패했다. 강 감독은 “역시 (허재 감독이) 대단했다. 그래도 큰 점수차로 지지는 않았다. 비록 우승을 못했지만, 이 대회를 계기로 강동희란 선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의미를 뒀다.

● 1990년 농구대잔치 1차 대회 결승

2번째는 1991년 1월2일에 열린 1990농구대잔치 1차 대회 결승이다. 당시 제대 직전이었던 강동희는 상무 소속으로, 친정팀 기아와 맞붙었다. 기아에는 허재 뿐 아니라, 한기범과 강정수, 정덕화 등이 버티고 있었다. 상무 역시 최병식, 이훈재, 이영주, 김대의 등 실업팀 주전들이 포진했지만, 결국 기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때 역시 허재를 당해내지 못했다. 강동희는 2차 대회 이후 기아에 복귀해, 더 이상의 결승 맞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프로에 와서도 2002∼2003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강 감독이 창원 LG, 허 감독이 원주 TG 유니폼을 입고 맞붙었다. 결과는 3승2패로 허 감독의 승리였다. 결승만 놓고 보면, 강 감독이 2전 전패. 플레이오프까지 합치면 3전 전패인 셈이다.

둘이 선수로서 함께 이룬 업적은 대단했지만 항상 스포트라이트는 허 감독 쪽으로 치우쳤다. 강 감독도 이 점에 대해서는 “사실 그랬다”고 답한다. “한 번 넘어서야죠”라는 강 감독의 말이 결코 의례적이지 않은 이유다. 이번에는 정말 가능할까. KCC와 동부의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 1차전은 16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 @setupm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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