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金 전희숙 스토리] 亞찌른 엉뚱검객 “하늘의 아빠, 보셨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7시 00분


“딸 올림픽 출전 보고 싶어하셨던 아빠, 2012년 금메달로 꼭 한 풀어드릴게요”

남현희(29·성남시청)∼오하나(25·충북도청)∼서미정(30·강원도청)과 짝을 이뤄 22일 여자펜싱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전희숙(26·서울시청)은 남현희의 뒤를 이을 재목이다. 이미 중경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세계랭킹은 5위. 아시안게임을 넘어, 런던올림픽에서도 기대되는 선수다.

○순수한 비둘기 소녀, 아시아무대를 날다

전희숙이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중경고 안에는 펜싱부 선수들을 위한 합숙소가 있었다. 한강근처인 중경고에는 비둘기가 자주 나타났다. 여윈 몸매였다. 측은한 마음의 전희숙은 밥 지을 쌀 몇 톨을 뿌려 비둘기들의 허기를 달래줬다.

비둘기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는지, 어느 순간부터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는 수십 마리를 넘어섰다. 이제는 쌀 한 바가지를 줘도 모자랄 판이었다. 선수들 먹을 식량을 비둘기가 축 내자, 전희숙은 지도자에게 혼났다고 한다. 경기장에서는 세계정상을 두드리는 빈틈없는 검객이지만, 일상에서는 이렇게 다소 엉뚱하고, 순수한 면도 있다.

○여자라고 못할 게 뭐 있어…납땜질도 척척

펜싱 칼은 전자감응기에 연결시켜야 하는데, 보통 여자선수들은 이음새 부분에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희숙은 중학교 시절부터 펜싱 칼을 잘 수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동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와서 전희숙에게 부탁하곤 했다.

전희숙은 “아버지께서 전기기술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웃는다. 아버지는 펜싱 선수인 딸에게 인두기로 땜질 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도 펜싱 칼을 고치다보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다. 펜싱선수로서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에게 바친 금메달

전희숙의 아버지는 2008년 6월,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딸의 경기라면, 중고교시절부터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던 ‘펜싱 대디.’ 아버지는 저승에서도 딸을 지킨다. 2009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때도 아버지가 꿈에 나타났다.

전희숙은 “‘죽기 전에 우리 딸 올림픽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던 아버지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털어놓곤 했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때는 2008년 8월. 자신이 출전했다면 두 달을 더 사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귀국하면 충주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찾을 예정인 전희숙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아버지의 한을 꼭 풀어 드리고 싶다”고 했다.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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