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했던 90분… “아르헨전도 오늘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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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엔트리 선발 마지막 평가전 에콰도르에 완승
“공격루트 다변화… 수비라인도 비교적 안정” 평가

“대∼한민국.”

붉은 물결이 파도를 쳤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가상 아르헨티나’ 에콰도르의 평가전에 6만2209명의 팬이 몰렸다. 2007년 6월 2일 네덜란드와의 평가전(6만2884명) 이후 6만 명이 넘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팬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대표팀에 거는 기대가 컸다. 대표팀은 2-0 완승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했다.

허정무 감독은 예비 엔트리 30명 중 최종 23명을 가리는 사실상 마지막 경기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먼저 그동안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에 선발로 기용하지 않던 골키퍼 정성룡을 투입했다. 대표팀 주전 수문장 이운재가 K리그에서 실점률이 높아지자 “대체 골키퍼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에 선발로 투입한 것이다. 정성룡은 후반 19분 오스왈도 민다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슛을 막아내는 등 안정적인 플레이로 큰 경기에서 활약할 가능성을 보였다.

공격라인에서는 이동국과 염기훈이 투톱을 이뤘다. 둘은 좌우를 번갈아가며 공격 루트를 다변화하면서 골을 노렸다. 하지만 아쉽게 골을 잡아내진 못했다. 전반 37분 이동국이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을 파고들며 띄워준 볼을 염기훈이 골 지역 왼쪽에서 헤딩슛 했지만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다. 이동국은 후반 14분 김재성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슛을 날렸지만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골은 후반 21분 이동국 대신 투입된 막내 이승렬(21)의 몫이었다. 이승렬은 7분 뒤 염기훈이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백 헤딩 패스를 한 것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받아 치고 들어가며 차 넣었다.

허 감독은 미드필드에서는 김재성과 신형민을 투입해 가능성을 살폈다. 김재성은 오른쪽에서 재빠른 돌파와 감각적인 패스를 선보여 허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박지성 대신 후반에 교체 투입된 이청용은 후반 39분 추가골을 터뜨려 팬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이청용은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가다 김보경에게 패스했고 리턴된 볼을 가슴으로 트래핑하면서 상대 수비를 맞고 나오는 것을 다시 차 골로 연결했다.

김동진-조용형-곽태휘-오범석으로 구성된 수비라인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후반에 투입된 황재원은 볼을 걷어내려다 뒤로 빠뜨리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김대길 KBS 해설위원은 “공격을 다변화시킨 게 돋보였다. 공격수들이 공격 루트를 만들려고 열심히 뛰었다. 이동국도 잘 뛰었는데 골을 넣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최진한 FC 서울 2군 감독은 “부상을 염려해 양 팀이 비교적 느슨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미드필드부터 짜임새 있게 경기를 펼쳐나갔다. 골도 멋있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월드컵 출정식을 가진 대표팀은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22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24일 일본과 평가전을 치른다. 대표팀은 25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가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한 뒤 6월 5일 남아공에 입성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뚫고 막고… 동료들 독려… 캡틴 박지성의 힘


“넘버 세븐∼. 박∼지∼성∼.”

경기에 앞서 장내 아나운서가 이름을 부르자 그라운드의 열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부 여성 팬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16일 에콰도르와의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 선발 출전한 캡틴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사진). 경기 전까지만 해도 후반 교체 출전이 예상됐던 그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일정을 마친 뒤 11일 귀국해 쉴 겨를도 없이 대표팀에 합류했기 때문. 하지만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캡틴을 벤치에 앉혀 두지 않았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엔 ‘대표팀의 심장’ 박지성이 제격이란 게 그의 판단. 국내 마지막 평가전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위한 배려의 의미도 있었다.

그라운드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박지성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다른 선수들을 독려하는 손짓에선 듬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경기가 시작된 뒤 피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반 45분을 소화한 그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며 반대쪽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 줬고, 순간적인 돌파로 상대 수비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여러 차례 자로 잰 듯이 전방으로 이어준 패스도 일품.

수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상대를 괴롭혔고, 골문까지 내려와 상대 공격을 차단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왼쪽에서 중앙, 후방을 가리지 않고 정말 폭넓게 움직였다. 공수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경기 흐름을 조절하는 능력도 발군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그라운드에서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고 덧붙였다.

경기가 끝난 뒤 박지성은 “이제 24시간 내내 월드컵만 생각하겠다. 하나로 힘을 모아 국민의 염원을 이뤄내겠다. 손을 모으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을 26일 앞두고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평가전에서 승리를 낚았다. 축구 대표팀은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이승렬(오른쪽), 이청용의 연속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뒀다. 후반 28분 선제골을 넣은 이승렬이 이청용을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있다.대표팀은 22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24일 일본과 친선 경기를 치른다. 사진 제공 OSEN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을 26일 앞두고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평가전에서 승리를 낚았다. 축구 대표팀은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이승렬(오른쪽), 이청용의 연속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뒀다. 후반 28분 선제골을 넣은 이승렬이 이청용을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있다.대표팀은 22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24일 일본과 친선 경기를 치른다. 사진 제공 OSEN
“가능성 충분… 팬 실망시키지 않겠다”

■ 허정무 감독 출사표

남아공 월드컵을 향해 닻을 올린 지 2년 6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사상 첫 원정 16강을 위해 마지막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힘이 필요한 때가 왔다.

어렵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가 B조에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의 맹주 나이지리아, 유럽의 복병 그리스를 만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16강 진출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솔직히 16강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 그라운드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친다. 박지성과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 과거와 달리 유럽파가 많은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박지성 등은 훈련 때나 휴식을 취할 때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리 상대팀 선수들의 특성을 자세하게 얘기해 준다. 유럽에서 뛰면서 쌓은 경험을 선수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 결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은 승리와 16강 진출에 대해 ‘꼭 해야 할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또 국민의 응원이 있다. 오늘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 6만 명이 넘는 팬이 운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때도 전 국민이 하나 된 붉은악마의 응원이 4강 신화를 쓰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런 팬들의 열망과 선수들의 열정이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16강 이상의 성적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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