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씽 스페셜] 최강희 감독 “진짜 우승감독은 ‘만만디’ 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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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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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최강희를 말하다

“여보 이겼어” 6일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성남을 격파하고 우승을 확정지은 전북 최강희 감독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최 감독의 성공 뒤에는 부인 이명성 씨의 내조가 숨어있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여보 이겼어” 6일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성남을 격파하고 우승을 확정지은 전북 최강희 감독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최 감독의 성공 뒤에는 부인 이명성 씨의 내조가 숨어있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전북 현대가 창단 후 처음 K리그 우승을 차지한 6일 밤, 최강희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당당히 들고 구단 프런트와 기자단 뒤풀이 장소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선수단과 서포터스 파티에 차례로 들러 우승 잔을 받아서인지 다소 불콰하게 취해 있었지만 ‘봉동 이장님’이란 별명처럼 넉넉한 웃음은 여전했다. 다음 날인 7일 오전, 전북 구단 사무실에서 최 감독을 따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강희대제’나 ‘재활공장장’과 같은 감독 타이틀을 뗀 ‘인간’ 최강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B형 남자와 O형 여자

최 감독은 우승 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으로 동갑내기 아내 이명성(50) 씨를 꼽았다.

최 감독은 1983년 지인의 소개로 이 씨를 만나 3년 뒤 결혼했다. “제가 B형 남자에요. 성격이 굉장히 예민하고 꼼꼼해요. 평소에는 잘 안 싸우지만 한 번 싸우면 오래 가요. 아내는 정 반대죠. 충청도 출신에 O형이거든요. 싸우고 나서 5분 뒤면 제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립니다. 늘 만만디에요.” 오전 10시에 출발하자고 분명 말했는데 출발시간이 돼서야 옷을 챙겨 입는 아내 때문에 속 터진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씨의 낙천적인 성격이 날카로운 최 감독의 성격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했다. 2001년 수원 코치에서 물러나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최 감독은 아내의 권유로 스페인으로 갔다. 3개월 동안 축구장 근처에도 안 가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내가 한국에서 다시 지도자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절망 하던 때 이 씨는 “당신을 믿어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며 묵묵히 힘을 불어넣어 줬다.

최 감독은 “나도 내 자신을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아내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05년 7월, 전북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즈음 최 감독은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둥근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은 성격이 똑 같아졌어요. 부부가 닮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정상에서 팀을 바꾸다

그가 처음 전북 지휘봉을 잡았을 때 팀은 기대 이하였다. 밤에 합숙소에 가보면 배달 오토바이가 오고가기 일쑤. 선수들은 자기관리란 마인드 자체가 없었다. 팀 내 선수들 간 출신 별로 계파가 갈려 있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 감독은 부임 첫해 FA컵, 다음 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상에 섰을 때 그는 팀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단기 토너먼트에서 승부를 볼 수는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6∼7개월 간 대장정에서는 절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포지션 별로 꼭 필요한 선수 영입을 위해 최 감독은 구단과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한 물 간 스타들을 조련해 보석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병행됐다. 서서히 팀이 달라졌다는 걸 그도 서서히 피부로 느꼈다. “훈련장 분위기는 어느 팀보다 좋다고 자부합니다. 예전에는 기피하는 구단 1위였는데 이제는 선수들이 전북으로 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네요.” 올 시즌을 앞두고 ‘이제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믿고 따라 준 코치와 선수들 그리고 구단에 정말 감사하죠.”

○젊은 세대와 적극 의사소통

잘 알려진 것처럼 최 감독은 한때 ‘스타크래프트’ 마니아였다. 수원 코치 시절 컴퓨터 앞에 앉으면 날 새는 것도 몰랐다. “내가 학창시절에 컴퓨터 게임을 알았으면 수차례 가출했을 겁니다.” 인터넷과도 친근하다.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개설해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팬들에게 하나하나 답 글을 달아주며 소통을 시도했다. 입소문이 퍼져 수많은 팬들이 홈페이지에 몰려 답 글을 달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 모으는 동시에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하게 됐다.

최 감독은 지금도 열성 팬들이 훈련장에 찾아오면 사인은 물론 시간이 될 때면 직접 차에 태워 시내에 데려다준다. “선수들에게도 팬 없는 프로스포츠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늘 강조합니다. 지역 대학이나 고등학교 행사가 때 선수들을 데려가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최 감독은 올 초 팀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홈페이지를 닫았다. “이제 우승했으니 다시 홈페이지를 열어야 하나요?”

전주|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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