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루게릭 병 앓는 박승일과 유재학 감독의 ‘눈빛 교감’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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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이 형,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모비스 유재학 감독(46)은 며칠 전 잊지 못할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연세대 코치 시절 제자였던 박승일(38)이 보낸 고마움의 표시였다. 박승일은 2002년 루게릭병(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근위축성 측상경화증)에 걸려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고 있다. 유 감독은 박승일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지난 주말 모처럼 박승일의 용인 집을 방문했다. 박승일은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어 침대에 누워 있지만 정신은 말짱한 상태. 어머니의 도움으로 자음과 모음이 적힌 글자판에 눈을 깜빡여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문자 메시지 역시 같은 과정으로 몇 분이나 걸려 보냈다. 올해 들어 눈꺼풀 근육마저 움직이기가 힘겨워졌지만 박승일은 유 감독과 옛 추억을 떠올리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유 감독은 “승일이는 대학 시절 문경은, 김재훈 등과 동기였는데 멤버가 워낙 좋아 출전 기회가 적었다. 그래도 성실했고 산이라도 뛰게 하면 게으름 한 번 피운 적이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은퇴 후 미국 유타 주에서 유학하던 박승일은 용병 선발을 위해 현지를 찾은 유 감독을 집으로 초청해 어려운 형편에도 김치와 밥을 대접할 만큼 정이 넘쳤다.

박승일은 유 감독의 전임인 최희암 감독이 모비스에 있던 2002년 최연소(31세) 코치로 발탁됐으나 불과 4개월 만에 루게릭병 선고를 받았다. 그 후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운명조차 알 수 없게 됐지만 농구를 향한 박승일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TV 농구 중계시청을 빼놓지 않으며 은사 최희암 감독 등 가까운 지도자에게 농구 전술에 대한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15일 프로농구가 개막하면서 박승일의 마음은 다시 설렌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외출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얼마 전 휠체어를 주문했다.

“승일이가 단 한 번만이라도 농구장에 가봤으면 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요.” 새 시즌을 시작한 유재학 감독의 가슴 한 구석에는 눈빛으로 주고받은 박승일과의 약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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