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말한다] 선동열의 2004년 KS 9차전

  • 입력 2009년 10월 6일 0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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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KS 9차전 ‘빗속 혈투’ … 통한의 오버런, 아직 속 쓰려

“한국시리즈 우승도 많이 해봤지만 패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요. 폭우 속에 치렀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내 생애 처음 패해 본 한국시리즈인데….”

선수로, 감독으로 숱한 가을 신화를 써내려간 삼성 선동열(46·사진) 감독. 우승을 밥 먹듯 했기 때문일까. 그는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포스트시즌 경기로 패배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로 삼성 수석코치 시절인 2004년 현대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그것도 폭우 속에 치러졌던 9차전이었다.

“경기 전부터 장대비가 쏟아져 도저히 경기를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무승부가 3차례나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강행한 9차전이었죠. 1-8로 뒤지다 야금야금 7-8까지 따라갔는데 강명구가 오버런을 하면서 그만….”

현대는 8-5로 쫓기자 8회말 특급마무리 조용준을 투입했다. 그라운드는 논바닥을 연상시켰고, 조용준의 왼발이 착지할 때마다 빗물은 펌프질을 하듯 튀어 올랐다. 야수는 뒤뚱걸음으로 수비를 해야만 했다.

신동주가 3루수 실책으로 나가고, 대타 박종호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면서 11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그리고 재개된 뒤 조동찬의 우전안타. 현대 우익수 심정수는 홈을 포기하고 천천히 2루 쪽으로 공을 뿌렸다. 그런데 3루를 도는 신동주를 류중일 3루코치가 막아섰다.

여기서 1루 대주자 강명구는 3루를 향해 질주하다 뒤늦게 3루주자를 발견하고는 멈추다 런다운에 걸려 태그아웃. 삼성은 내야땅볼로 8-7까지 따라갔지만 두고두고 한이 되는 장면이었다.

“9회에 박진만이 공을 놓치면서 다시 행운이 우리 쪽으로 오는가 했어요.”

9회말 2사 1·2루. 신동주의 높이 뜬 타구를 현대 유격수 박진만이 빗물 때문에 놓치고 말았다. 8-7 1점차, 계속된 2사 1·2루. 그러나 강동우가 1루땅볼로 물러나면서 숨막혔던 사상 최초 9차전 혈투가 끝났다.

“선수 때도 그런 비를 맞고 경기 한 적이 없어요. 그해는 수석코치였지만 개인적으로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딘 해였는데. 지금 감독을 하고 있을 때보다 솔직히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플레이오프까지 거쳐 투수는 고갈됐고…. 선수들이 너무 힘들었죠. 애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고, 저도 선수 시절을 포함해 한국시리즈에서 처음 져 본 거라 뼈아팠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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