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전문 이창환, 감격의 주연되다

  • 입력 2009년 9월 9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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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 리커브 남여 개인 결승전에서 우승한 한국의 주현정(왼쪽)과 이창환이 금메달을 보이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 리커브 남여 개인 결승전에서 우승한 한국의 주현정(왼쪽)과 이창환이 금메달을 보이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분명 국가대표지만 사선(射線)보다 과녁이 더 익숙한 양궁 선수가 있었다. 이른바 '타깃 에이전트(Target Agent)'. 동료 선수가 쏜 화살의 점수를 과녁에서 확인하고 화살을 뽑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는 2006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양궁 남자 리커브 국가대표에 뽑혔다. 단체전에서만큼은 그도 단골 금메달리스트였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와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개인전은 항상 남의 잔치였다. 홀로 하는 경기에서는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최고 성적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딴 은메달이 전부였다. 개인전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 그는 대표팀의 '타깃 에이전트'를 도맡았다. 사선이 아닌 과녁에서 남의 화살을 뽑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단체전 말고 개인전에서도 좀 잘해라", "너는 왜 개인전 금메달은 못 따느냐"…. 주위에서 들리는 말은 그의 가슴에 못으로 박혔다. 개인전이 끝나면 그는 우승한 선수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서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비운의 국가대표'였던 그의 이름은 이창환(27·두산중공업)이다.

9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막을 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는 이창환의 한풀이 무대였다. 4강전 상대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랭킹 1위인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 이창환은 1엔드 3발을 모두 10점 과녁에 명중시켰다. 당황한 루반은 2번째 화살에서 6점을 쏘며 스스로 무너졌다. 112-109의 완승.

결승전에서는 대회 2연패에 도전한 임동현(23·청주시청)마저 113-108로 누르고 국제대회 개인전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골 조연에서 어엿한 주연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이창환은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드디어 가슴의 못이 뽑힌 기분"이라며 "오랫동안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대표 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배운 게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울먹였다.

여자부 리커브 개인전 결승에서는 지난해 처음 태극마크를 단 늦깎이 주현정(27·현대모비스)이 '소녀 신궁' 곽예지(17·대전체고)를 113-111로 이기고 역시 국제대회 개인전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전날 남녀 리커브 단체전을 휩쓸었던 한국은 이날 남녀부 개인전마저 우승하며 리커브 전 종목을 석권했다. 은메달의 이변을 일으킨 여자 콤파운드 단체전까지 합쳐 한국은 안방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금 4개, 은메달 3개를 따내며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울산=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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