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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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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투표서 타격 3관왕 김현수 제쳐
삼성 최형우는 역대 최고령 신인왕 올라
나란히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개표가 시작되자 둘의 얼굴엔 잠시 긴장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는 김광현에게 몰렸고 김현수는 예상했다는 듯 웃음을 되찾고 라이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20세 동갑내기이지만 1년 선후배 사이인 투수 김광현(SK)과 타자 김현수(두산)의 최우수선수(MVP) 대결은 후배 김광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올 시즌 다승(16승 4패), 탈삼진(150개) 2관왕을 차지한 김광현은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자단 투표에서 94표 가운데 51표를 얻어 MVP로 뽑혔다. 김광현은 부상으로 2000만 원 상당의 순금 야구공 트로피를 받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2002년(삼성 이승엽) 이후 6년 만이다. 지난해 김성근 감독 영입 이후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SK는 2000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MVP를 배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다승왕은 2004년 배영수(삼성) 이후 5년 연속 MVP로 뽑혔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탄생한 26명의 MVP 가운데 10명이 다승왕 출신이다.
역대 최연소 타격 3관왕(타격, 최다안타, 출루율)에 오른 김현수는 27표, 홈런왕 김태균(한화)은 8표, 타점왕 카림 가르시아(롯데)는 5표, 평균자책왕 윤석민(KIA)은 3표를 얻었다.
정규 시즌을 마쳤을 때만 해도 MVP를 놓고 김광현과 김현수가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한국시리즈에서 21타수 1안타로 부진했던 게 김현수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신인왕 투표에서 팀 동료 임태훈에게 밀려 2위를 했고 올해 MVP 투표에서도 2위에 그친 김현수는 “내년을 위해 올해 끝이 좋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한 ‘중고 신인’ 최형우(삼성)는 94표 가운데 76표를 얻어 7표를 얻은 김선빈(KIA) 등을 제치고 사상 최고령(25세) 신인왕이 됐다.
타자 신인왕은 2001년 김태균 이후 7년 만이다. 상금 200만 원을 받은 최형우는 올 시즌 전 경기(126)에 출전해 타율 0.276, 19홈런(공동 5위), 71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왕이 MVP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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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김광현
“아시아시리즈-WBC 활약 기대하세요”▼
“현수 형에게 정말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요.”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받은 김광현은 강력한 경쟁자였던 김현수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타격 3관왕에 오른 김현수는 개표 초반 김광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시상식장을 한때 긴장시켰다.
김현수 옆에 앉은 김광현은 “현수 형하고 ‘재투표만 안 갔으면 좋겠다’고 서로 얘기했는데 뜻대로 됐다”며 웃었다.
김광현은 “(한국시리즈 이후) 현수 형이 많이 힘들어해서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제가 후배라 선뜻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현수 형과 내년에도 좋은 경쟁자로서 다시 겨뤘으면 좋겠다”며 씩씩하게 포부를 밝혔다. 아쉽게 MVP를 놓쳤지만 김현수는 김광현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며 축하해 줬다.
김광현은 김성근 감독이 선물로 줬다는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김광현은 “감독님이 넥타이를 사주시며 ‘너는 나에게 멱살을 잡혔다’고 말씀하셨다”며 웃었다. 그는 “감독님의 2000승도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올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아 시리즈와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꾸준히 잘하고 싶다”며 국가대표 에이스다운 포부를 밝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인왕 최형우
방출아픔 딛고 수상 “자신감 얻어”▼
25세 중고 신인왕 최형우(사진)는 머리부터 긁적였다. 1983년 첫 신인왕이 시상된 이후 사상 최고령 기록을 세운 그는 “사실 데뷔하고 2, 3년 지난 뒤부터 신인왕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며 웃었다.
신인왕 자격은 ‘5시즌 이내 투수는 30이닝, 타자는 60타석 미만’으로 규정돼 있다. 경기에 잘 나가지 못하면 데뷔 후 5년까지는 자격이 유지되는 것. 최형우는 데뷔 5년째인 올해 신인왕을 극적으로 따냈다.
늦깎이 신인왕의 탄생까지는 시련이 많았다. 2002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최형우는 4년간 1군에서 8번 타석(6경기)에 선 뒤 2005년 방출됐다. 이후 2년간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하고 올해 삼성에 재입단했다. 사실상 프로 7년차다.
그는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한 게 수상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 같다. 군 시절 보살펴준 감독님과 코치님이 가장 생각난다. 내년에도 이곳(시상식장)에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형우는 “올해 좋은 경험을 많이 했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내년이 8년차니까 (다른 신인왕들처럼) 2년차 징크스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