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린 야구에 美쳤다…어쩔래?”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9시 04분


야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10월이다. 포스트시즌이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포스트시즌을 보기 위해서 골수 야구팬들은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평소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과감하게 ‘질러’ 버린다.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대구구장 앞에서도 이런 팬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야구에 미친 이색 팬들을 만나봤다.

○ 아침 일찍 줄서고, 중간에 중간고사까지 보고 온 삼성 팬 김경아 씨

대학생 김경아 씨(영남이공대)는 20일 오전 10시 대구구장에 도착해 3루 쪽 출입구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줄을 섰다. 친구 세 명과 함께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경기 시작 8시간 전 야구장을 찾은 김 씨에게는 이날이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을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유혹은 너무나 컸다. 결국 일찌감치 야구장에 와서 자리를 맡고 친구가 봐주는 사이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방법을 택했다.

김 씨는 “우리가 일찍 와 세 번째 순번으로 줄을 섰다. 오늘도 시험이 있고, 모레도 시험이 있지만 시험보다 야구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며 열광적인 애정을 표현했다. 김 씨는 “삼성이 포스트시즌 진출 팀 가운데 방망이가 약한 것은 인정하지만 두산을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것”이라며 삼성의 승리를 확신했다.

○ 야구 보러 전국을 돈 두산 팬 신선실 씨

직장인 신선실 씨는 두산의 열성 팬이다. 그가 올 정규 시즌에 본 경기는 70여회가 넘는다. 잠실에서 열린 두산 홈 경기는 거의 다 봤고, 인천, 대전, 부산, 광주 등 전국을 돌며 원정 응원까지 나섰다.

19일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보기 위해 전날 대구에 내려와 하루 밤을 자고 친구와 함께 일찌감치 경기장을 찾은 신 씨에게 야구는 삶의 활력소이고, 두산은 생활을 위한 필수 영양 성분인 셈.

신 씨는 “대구는 올 시즌 한번도 안 왔는데 이번 포스트시즌에 와서 야구장이 있는 모든 지역을 찍게 됐다. 잠실에서 열린 1,2차전을 다 봤는데 2차전 연장 승부가 아쉬웠다. 직장 때문에 월요일은 출근해야 하지만 두산이 꼭 이기리라 믿고 응원하기 위해 이렇게 대구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 삼성에서 두산팬이 된 대구 토박이 오진영 씨

20일 오후 3시 30분 대구구장 1루 쪽 스탠드.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햇살로 스탠드는 찜질방 분위기였지만 오진영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오 씨는 두산 김현수의 유니폼을 입고 있어 그의 열렬한 팬임을 짐작케 했다. 재미난 점은 그녀가 서울에서 응원 온 원정 응원단이 아니라 대구 토박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오 씨가 원래부터 두산 팬이었을 리는 만무한 법.

오 씨는 “원래 삼성 팬이었다. 그러다 두산의 팀 컬러가 맘에 들어 두산을 응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 씨를 사로잡은 요소는 빠른 야구와 선수에게 믿고 맡기는 모습이다. 오 씨는 “감독이 많이 개입하는 야구는 싫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그런 모습이 보였는데, 두산의 플레이는 팬을 반하게 한다”고 말했다.

대구 |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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