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도 선수심장과 함께 뛰었다

  • 입력 2002년 6월 5일 16시 50분


나성재 정미정씨 부부가 서로 어깨를 감싼 채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 서영수기자
나성재 정미정씨 부부가 서로 어깨를 감싼 채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 서영수기자
일 오후 서울 세종로 네거리는 축구팬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10만여명의 인파가 한국-폴란드전을 대형 전광판으로 지켜보며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그 순간 이들의 흥분상태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런 흥분상태가 신체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이날 저녁 세종로를 찾은 나성재(34·기업은행 대리) 정미정씨(32) 부부에게 휴대용 심장박동측정기를 달게 하고 심장박동의 변화추이를 관찰했다.

나씨는 직장 축구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축구광.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정씨는 마지못해 남편을 따라나섰다. 나씨가 “대∼한민국”을 연호하자 정씨는 “16강 진출하면 세금이라도 깎아주나?”라며 뾰로통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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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냉전’도 잠시. 전반 26분. 황선홍의 멋진 발리슛이 터지자 나씨는 붉은 악마들과 함께 펄쩍펄쩍 뛰었고 정씨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이 순간 나씨의 심박수는 분당 175회, 정씨는 150회를 기록했다. 평균 심박수는 나씨가 64회, 정씨가 74회. 나씨는 평소보다 2.73배, 정씨는 2.03배 빨라진 것이다.

한국팀이 실점 위기를 맞거나 태극전사의 슛이 폴란드팀의 골문을 빗나가는 안타까운 순간에도 나씨 부부의 심박수는 100회를 넘었다. 휴식시간에 응원을 할 때도 나씨의 심박수는 170회까지 상승했다. 아내 정씨는 첫 골 때보다 높은 155회.

후반 8분. 유상철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세종로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첫 승이 눈앞에 보이자 나씨의 심박수는 175회를 넘었고 정씨는 160회를 기록해 격렬한 흥분 상태에 빠졌다.

드디어 경기가 끝났다. 수만명 인파가 “코리아” “이겼다”를 연호했다. 나씨와 정씨도 얼싸안고 하나가 됐다. 이 순간 부부의 심박수는 각각 178회, 161회의 극한치를 기록하며 이날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오후 11시경 자리를 뜨면서 나씨는 “10년 묵은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리네”하며 담배를 물었다. 부인 정씨는 “담배 줄이기로 했잖아. 이겨도 피우는 거야?”하면서 남편의 팔짱을 꼈다. 이 때 나씨 부부의 심박수는 서서히 100회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씨 부부는 전후반 90여분 동안 모두 143회나 “대한민국”을 외쳤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심박측정기로 살펴보니…5분이상 전력질주한 듯▼

“한국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심장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터질 듯 했다.”

나씨 부부의 심박수 변화를 분석한 경희대 스포츠의학과 박현 교수의 진단이다.

축구 선수들의 심박수는 포지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160회정도. 전력질주할 때는 180∼190회에 이른다. 이날 나씨 부부의 최대 심박수는 나씨가 178회, 정씨가 161회였다.

골인 장면 등에서 나씨 부부의 심박수는 슛을 날린 선수들과 거의 같았던 셈이다. 경기상황이 긴박하지 않을 때는 90∼100회의 심박수를 유지했지만 결정적인 슈팅 순간 등에는 상당한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박 교수는 “30대 남자의 경우 전력으로 5분이상 뛰어야 심박수 178회 정도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심박수는 인체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 운동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흥분하면 피가 빨리 돌아야 하기 때문에 심박수가 증가한다.

심장전문의 박지원씨는 “30대의 경우 심박수 178, 161은 5분 이상 전력질주했을 때 나타나는 수치”라면서 “심장이 약한 사람이 격렬한 응원을 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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