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나]박인수 서울대 음대 교수

  • 입력 2001년 4월 18일 18시 34분


박인수 서울대 교수
박인수 서울대 교수
축구 경기장에서 부르는 애국가는 정말 색다르다. 그라운드에 도열한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애국가를 부를 때면 절로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뭉클해 진다. 애국심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일까.

1997년 열렸던 한국-일본의 경기 때 나는 처음으로 축구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이날 한국이 일본에 대역전승을 거둬 기분이 정말 좋았다. 마리아 칼라스 선생께 사사를 받은 뒤 수없이 큰 국제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지만 이날은 흥에 겨워 절로 노래가 입에서 나왔다.

나와 축구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머릿속은 언제나 가죽으로 만든 멋진 축구공을 가지고 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의 양복 저고리 안주머니에 삐죽이 나와있는 돈다발이 보였다. 축구공의 소유욕에 정신이 없어 앞뒤 생각없이 그 돈 다발을 전부가지고 종로4가 운동구점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가죽공을 다섯 개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자랑한 적이 있다. 공 두개는 친구들에게 줬고 한 개는 친구들과 하루종일 신나게 축구를 즐기고 두개는 집에 감추어 두었다.

이튿날이 되자 아버지의 돈다발이 없어진 것과 그 범인이 나라는 것이 발견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곧바로 이미 헌공이된 것을 빼고 축구공 4개를 회수하여 나를 데리고 운동구점에 달려가 현금으로 바꿨다. 평소 무서웠던 아버지 였기에 혼쭐이 날것을 기대 했는데 미아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축구공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냐. 하지만 다시는 이런짓 하지 마라고” 하시며 나를 업어 주셨다.

그후 음악을 공부하면서 축구와는 좀 멀어지게 됐지만 ‘축구공 사건’ 으로 축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됐다. 요즘 나는 내년 월드컵 무대에서 장엄하게 애국가를 부르는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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