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년차 미만 젊은 교사, 작년 626명 학교 떠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1일 03시 00분


“교원사회 무력감, 공교육 기반 위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임모 씨(30·여)는 교사 임용 3년 만인 지난해 교단을 떠났다. 임 씨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교사가 됐지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6학년 남학생이 가위를 들고 심하게 난동을 부려도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할까 봐 제지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학생에게 맞아 입원한 동료 교사, 과도한 학부모 민원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선배 교사를 보면서 그는 ‘더 버티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임 씨는 더 이상 학교에서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심해져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자 그는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임 씨처럼 퇴직한 10년 차 미만 젊은 교사가 62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 10년 차 미만 퇴직 교원은 2020년 473명에서 2021년 485명, 2022년 546명, 2023년 585명, 2024년 626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는 1∼9월 퇴직 교사만 606명에 이르러 지난해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 크다.

2023년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5법’이 통과됐지만 현장 교사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직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던 ‘직업 안정성’마저 성취감 저하 등으로 빛이 바랬다는 자조가 나온다. 젊은 교사 퇴직으로 공교육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말려죽인다” 폭언까지… 꿈 접는 교사들


젊은 교사들이 떠난다
“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말 안들어”… 학부모 갑질 두려움에 시달려
중도퇴직, 3년째 1000명 넘을듯… “우수교사 떠나면 피해는 학생몫”

뉴스1
“5년 전 제가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는 거의 모두가 말렸어요. 지금 동료들은 ‘그때 네 선택이 맞았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모르는 교사들에게서도 퇴직 상담 요청이 옵니다.

2008년부터 초등교사로 교단에 선 김모 씨는 5년 전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는 “각종 민원이나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인데 처우나 보상은 개선되지 않으니 교사들의 고민이 깊다”고 했다. 우수한 교사가 교단을 떠나면 그 피해가 결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는 만큼 실효성 있는 교사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 자발적 중도퇴직 3년 연속 1000명 넘을 듯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의 자발적인 중도퇴직(의원면직) 교원 규모는 2020년 768명에서 2021년 821명, 2022년 881명, 2023년 1004명, 2024년 1004명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 1∼9월 기준 이미 997명이 퇴직한 것으로 집계돼 3년 연속 연간 중도퇴직 교원 수 1000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5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77.5%)이 가장 많은 응답으로 꼽혔다. 낮은 급여, 과도한 업무 등도 이유로 꼽혔다.

20년 차 중학교 교사 이모 씨는 “‘아이가 학원을 빨리 가야 하니 학교 수업을 일찍 끝내 달라’ ‘교사는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왜 내 말을 안 듣느냐’ 같은 민원도 있다”며 “중학생 자녀가 교사를 꿈꾸지만 부모로서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10년 차 안팎 교사들은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교대에 갔거나 임용고시에 합격한 이들이다. 교사 선호도가 높았던 때라 당시에는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교직을 택한 우수 인재들이다. 지금은 악성 민원과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로 인해 하나둘 교단을 떠나고 있다.

● “실효성 있는 교권 보호 대책 재정비 필요”

교원 사회에는 불안을 넘어 무력감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7월 경기 화성시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가 자녀 담임교사에게 ‘나도 공무원이라 어떻게 하면 말려 죽이는지 안다’고 고성을 지르며 폭언한 사건이 있었다. 교사들은 언제든 학부모의 이런 ‘갑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올해 명예퇴직한 교사 이모 씨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냉소적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정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정부가 민원을 개별 교사가 아닌 전담대응팀이 전담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여전히 교사 개인이 감당하는 구조”라며 “교권 보호와 민원 대응을 위해 시범 도입된 플랫폼 ‘이어드림’ 역시 학교 상담 예약 시스템 정도여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경남 통영시에서 17개 시도 교육감을 만나 학교 민원 대응 및 지원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며 “(교사 대상) 폭행과 성희롱 등이 발생했을 때 관할청의 고발을 강화하고 악성 민원인에 대한 학교장 처분 권한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전 의원은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민원 대응 체계와 교사 보호 장치를 실효성 있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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