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하는 산림녹화의 기적을 넘어[기고/이경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17일 12시 53분


기적의 산림녹화, 이제는 관리가 과제다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이경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경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산에는 나무가 거의 남지 않았다. 1945년에 태어난 나는 1950~60년대의 겨울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과 달리 그 시절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대부분의 집이 나무는 물론 낙엽까지 긁어다 연중 취사와 겨울 내내 난방에 사용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산에 불을 질러 생계를 이어가던 화전민도 많았다. 산에 나무가 없는 옛 사진을 보면, 그때의 매서운 추위가 다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정부가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체계적이고 전국적인 나무 심기가 시작된 것이다. 식목일뿐 아니라 봄이면 곳곳에서 나무를 심는 행사가 이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삼촌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무를 심었다. 그 결과 10년 동안 100만ha를 조림하겠다는 목표를 4년 앞당겨 달성했다. 1979년 시작된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도 1년 일찍인 1987년에 마무리됐다. 이렇게 15년 동안 전국 산지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12만ha에 나무가 심어졌다.

1950~60년대에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도 고사하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에 1970년대 들어서는 대대적인 사방사업과 함께 성장 속도가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같은 속성수를 대량으로 심었다. 이는 숲의 기능을 단기간에 회복하고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심은 나무들은 황폐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숲의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일부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울창한 숲과 다양한 생물종은 그 덕분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심은 나무가 사라졌으니 실패한 것”이라는 주장은 숲의 생태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단편적 시각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성공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공인됐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과 국민적 참여가 결합된 민관협력 거버넌스의 기록은, 전 지구적 과제인 산림 복원의 해법을 제시한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1982년, 제1차 치산녹화가 완료된 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우리나라를 서독,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산림녹화를 이룩한 국가로 선정했으며, 당시 한국은 유일한 개발도상국이었다.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산림녹화 경험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기적, 그것은 바로 산림녹화를 통해 되찾은 금수강산이다. 산림녹화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국 진입과 함께 우리 현대사의 4대 성과로 꼽을 만하다.

이제는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해 나아갈 때다. 산림녹화 중심의 정책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산림경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산림녹화의 성과를 기반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 체계를 세워야 한다. 둘째, 목재 자급률을 높이고 임업 경쟁력을 강화해 산림이 경제적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녹화의 성공 경험을 국제사회와 공유해 전 지구적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최근 산림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 기자가 “산림녹화 시대에서 산림경영 시대로 넘어가는 성장통”이라고 표현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성장통 역시 새로운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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