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역사 강동역이 왜 성내동역으로?”… 역명 변경을 둘러싼 핑퐁게임[메트로 돋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5일 15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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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입니다. 서울시청은 그래서 ‘작은 정부’라 불리는데요, 올해 예산만 47조2052억 원을 쓰고 있답니다. 25개 구청도 시민 피부와 맞닿는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또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이런 건 왜 있어야 할까’ ‘시청, 구청이 좀 더 잘할 수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적이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그런 의문을 풀어드리는 ‘메트로 돋보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한 번씩 사회부 서울시청팀 기자들이 서울에 관한 모든 물음표를 돋보기로 확대해보겠습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서울시는 강동역의 역명을 성내동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서울시는 강동역의 역명을 성내동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시민 입장에서는 그냥 쓸데없이 돈 쓰는 걸로 보여요.”

기자는 최근 강동구 주민 A 씨에게 이런 제보를 받았습니다. 지하철 5호선 ‘강동역’이 주민들도 모르게 ‘성내동역’으로 바뀌게 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995년 11월 15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개통과 함께 28년 간 줄곧 써오던 강동역 대신 성내동역으로 바꾸기로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A 씨는 “지하철 역명을 바꾸려면 표지판 등을 전부 교체해야 할 텐데, 예산이 많이 들지 않겠냐”고도 우려했습니다.

● ‘강동역’이 ‘성내동역’으로… 市 지명위 통과

역명 개정은 지난달 4일 열린 ‘2023년 제1차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강동역을 ‘성내동역’으로 바꾸는 안이 통과되면서 결정됐습니다. 앞서 2016년 강동구의 지명위 의결 등을 진작 거쳤지만, 비용 문제로 추진이 지연되다가 7년 만인 지난달에야 서울시 지명위에 올라오게 됐다고 합니다. 서울시 지명위에선 공무원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9명의 지명위원들이 지명 변경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거론됐던 강동역 역명 개정이 올해 서울시 지명위에 올라오기까지는 한 서울시의원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서울시의회 김영철 시의원(국민의힘·강동5)이 그 주인공인데요, 그는 2014년 9월 강동구의원 시절 강동역 역명 개정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인물입니다. 당시 강동구는 김 의원의 제안을 수용해 2016년 3월과 2017년 2월 서울시 교통정책과에 역명 개정 요청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설 및 안내표지 교체에 많은 예산이 필요해 곤란하다”며 적극적이지 않았고, 결국 흐지부지 됐습니다.

이처럼 꺼진 줄 알았던 역명 개정 이슈를 다시 공론화시킨 것 역시 김 의원이었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에 당선된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15일 본회의에 출석해 “지하철 강동역을 성내역으로 역명을 개정해 달라”고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요청했습니다. 김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성내 1~3동에 8만 명이 사는데, 그 정도 인구가 되는 동의 역명 하나 없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역명 개정을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의원의 지역구에는 성내1~3동이 포함돼 있습니다.

● “법정동 중 성내동만 역명 없어”

김 의원의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한 지명위의 회의록를 살펴 보면 역명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서울시 도시철도운영팀장은 “강동구에 위치한 법정동 중 유일하게 강동역만 동명을 사용하지 않는 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강동구에는 성내동, 둔촌동, 천호동, 길동, 명일동, 상일동, 암사동, 고덕동, 강일동까지 모두 9개의 법정동이 있는데, 성내동을 제외하고 모두 동 이름을 딴 역명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지명위에 참석한 한 민간위원 B 씨도 “‘강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이름보다는 법정동명을 쓰는 게 더 나아보였고, 관련 기관들도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라 특별한 이견 없이 가결됐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시의 ‘도시철도 역명 관리기준 및 절차’가 명시한 지하철역명 제정 기준.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도시철도 역명 관리기준 및 절차’가 명시한 지하철역명 제정 기준. 서울시 제공

하지만 법정동명을 반드시 지하철역명으로 써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시의 ‘도시철도 역명 관리기준 및 절차’에 따르면 ‘역명 제정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 지역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 실정에 부합하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시로 옛 지명·법정동명·가로명을 예시 중 하나로 들어놓긴 했지만, 반드시 법정동명을 써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서울시의 ‘도시철도 역명 관리기준 및 절차’가 명시한 지하철역명 개정 기준.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도시철도 역명 관리기준 및 절차’가 명시한 지하철역명 개정 기준. 서울시 제공

오히려 서울시는 역명 개정 기준을 아주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도시개발사업, 택지개발사업 등으로 인한 역세권 환경 변화가 있거나 기존 역명으로 사용되던 목적물이 소멸되거나 변경돼 명칭을 사용할 때 시민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줄 수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역명 개정을 허락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달 열린 ‘2023년 제1차 서울시 지명위원회’ 회의록 일부. 한 지명위원이 “(역명 개정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이 오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2023년 제1차 서울시 지명위원회’ 회의록 일부. 한 지명위원이 “(역명 개정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이 오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역명 개정을 위해 강동구가 시행한 주민 여론 조사 시점이 지나치게 오래됐다는 점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회의록에 따르면 지명위에 주민 찬성 의견이 60.7%로 과반수수를 넘겼다는 여론조사가 제출됐는데, 이 조사는 2015년 4~6월 실시됐습니다. 이를 인지한 한 민간 위원이 “의견수렴이 2015년 4월이냐. 지금 2023년인데, 8년이 지났는데”라고 지적하자 강동구 교통행정과장은 “2014년에 이 안건이 시작됐고, 8년이 흘렀지만 지역의 변화는 크게 없었던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8년 사이 재건축 등으로 인한 인구 구성의 변화를 감안하면 주민들이 납득하긴 어려워보입니다.

● 소요 예산 4~6억 원… 비용 부담은 ‘핑퐁게임’

서울시는 역명 개정에 따른 예산을 4~6억 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철 출입구의 안내 표시는 물론 열차 안내도, 안내 방송까지 다 바꿔야 하는 사안”이라며 “3~6개월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고시하면 (역명 개정이) 효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예산은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강동구에서 부담하게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엔 역명 개정을 추진했던 강동구는 예산 부담과 시행 조치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이번엔 반대하고 있습니다. 강동구 관계자는 “서울시는 우리가 돈을 내고, 시행을 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럴 의사가 없다”며 “설령 서울시가 교부금을 지원해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명 개정에 따라 시스템을 바꾼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강동역에서 성내동역으로 역명이 변경된다는 사실을 강동구민 뿐 아니라 전 국민이 알도록 해야하는데 단순히 표지판 몇 개를 바꾼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역명이 변경되면 네이버나 카카오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도 강동역이 성내동역으로 표기되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강동구는 또 서울시가 과거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의적으로 역명 개정 안건을 상정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강동구 관계자는 “우리가 역명 개정을 요청한 것은 7, 8년 가량 전으로 상당히 오래됐는데도 서울시가 갑자기 올해에서야 지명위에 올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강동구는 주민 의견을 다시 수렴해 역명 개정에 대한 안건을 재상정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서울시와 함께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결국 시와 구의 ‘핑퐁게임’ 속에 강동역의 역명 개정 여부는 다소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오랜 역사가 반영된 역명을 함부로 바꾸면 시민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만큼, 서울시와 강동구가 핑퐁게임은 자제하고 좀 더 신중하게 논의하길 바랍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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