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환자 불이익…대안 필요”

  • 뉴시스
  • 입력 2023년 5월 15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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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간호화’ 법안(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 오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테이블에 오를 예정인 가운데, 해당 법안이 제정되면 가입자가 납입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기 어려워지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어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 나왔다.

폐기가 어려울 경우 환자 정보를 최소화한 서식을 만들어 환자가 직접 보험사에 전송하는 대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가입자 대신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제공하도록 규정한 것이 골자다. 가입자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할 필요가 없어진다. 국회에선 의료기관 내 환자의 정보를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전달하는 중계기관(보험개발원)을 규정하기로 한 상태다.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산하 의사회들은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실손보험 간소화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실손보험 간소화를 위한 입법은 보험사의 이익 증대가 아닌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보장받고 의사는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자와 의료계, 보험사 모두 합의가 가능한 법안이여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의료계는 현행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환자들이 보험금을 지급받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중계기관을 지정하려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발의됐다”면서 “이는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과정에 또 하나의 문턱을 놓는 것이며 결국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와 지급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가 이어지고 있고 환자 측에서 보험금 지급 거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중계기관인 보험개발원을 지정하면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축적된 환자 정보를 꼬투리 잡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면서 주장했다.

이익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의료법상 전신 마취가 아닌 이상 수술실로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도 국소마취가 가능한데, 수술실이 아닌 곳에서 국소마취를 할 경우 보험사에서 실손 보험금을 미루거나 지급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갑수 대한마취통증의학회의사회 회장은 “양질의 고가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보험사가) 병원의 청구를 거절하기 쉬워 질이 낮은 저가 의료 서비스를 환자에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보험사가 지금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해 의사들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면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중계기관이 지정되면 (보험사가) 백혈병이나 희귀난치병에 걸린 아이들한테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예로 일선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언어발달, 신경발달중재치료를 계획하고 놀이치료사, 미술심리치료사, 인지치료사 등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치료사 등이 아동의 발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수행한 행위는 국민건강보험법상 비급여 대상인 ‘언어치료, 신경발달중재치료’가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보험사들이 있다고 한다.

중계기관이 의료기관에 축적된 환자의 정보를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회 회장은 “정신과 환자들의 대부분이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취업, 결혼 등 영향이 갈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라면서 “중계기관이 환자 정보를 수집하게 되면 기존 정신과 진료 후 실손보험 혜택을 받으려던 환자들이 더 위축되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병원을 찾으려던 사람조차 진료를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혜욱 대한안과의사회 회장도 “중계기관을 정해 가족관계 증명서와 위임장, 환자와 보호자 신분증 등 모든 자료를 넘긴다면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애초 국회에서 발의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는 의료기관과 보험사 사이에 의료정보 전송 중계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두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계가 심평원이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급여 항목(건강보험 비적용 진료비)의 가격을 통일할 수 있고 개인 정보 유출 우려도 있다고 반발하자 중계기관이 보험개발원으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환자 정보가 심평원에 모아지는 것과 보험개발원에 축적돼 심평원으로 가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좌훈정 대한일반과의사회장은 “심평원 대신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더라도 결국 심사기구로 변질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의료계는 현재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폐기가 어렵다면 의료계와 환자, 보험사의 합의 하에 환자의 정보를 최소화한 서식을 만들고, 환자가 직접 해당 보험사에 전송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회장은 “16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돼 긴급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며 “급한대로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정보 서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치료비를 지급하는 보험으로 가입자만 지난해 말 기준 3997만 명 이상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린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실손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이후 14년째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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