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너라도 살아서 나가” 내보냈는데… 구조된 엄마의 오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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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하주차장 참사]
생사 엇갈린 포항 지하주차장의 비극

소방대원 구조 당시 상황 설명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우방신세계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날 태풍의 영향으로 침수된 주차장에서 2명이 구조되고 7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채널A 뉴스 화면 캡처
소방대원 구조 당시 상황 설명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우방신세계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날 태풍의 영향으로 침수된 주차장에서 2명이 구조되고 7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채널A 뉴스 화면 캡처
“○○야,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엄마,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6일 오전 물이 급격하게 들이차던 경북 포항시 남구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족에 따르면 수영을 할 줄 알았던 아들 김모 군(15)은 이 말을 남기고 헤엄쳐 입구 쪽으로 향했다. 수영을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보내고 죽음을 각오한 채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있다가 오후 9시 41분경 14시간 만에 구조됐다. 천장과 배관 사이에 형성된 에어포켓(산소가 남은 공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실종자 중 두 번째로 늦게, 17시간 만에 발견된 아들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 병원서 ‘우리 아들’만 찾은 엄마

7일 포항시 북구 포항의료원에는 전날 사망한 채 발견된 실종자 7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같은 날 극적으로 구출된 김모 씨(52)의 아들 김 군의 빈소도 차려졌다.

전날 구조된 김 씨는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져 저체온증에 시달리면서도 “우리 아들 어디 있어?”라며 연신 아들을 찾았다고 한다. 가족들도 먼저 헤엄쳐 나간 김 군이 당연히 생존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김 군의 아버지는 이날 오전 병원을 찾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아내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당신이 마음을 단디(단단히) 먹어야 우리 아(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말을 들은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김 군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엄마를 유독 따르던 ‘껌딱지 아들’이었다. 김 군 빈소를 찾은 친구 최모 군(15)은 “어머니가 드라이브를 가든, 장보러 가든 같이 따라가던 아들이었다”고 기억했다. 6일 새벽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이 나왔을 때도 엄마가 걱정됐던 김 군이 먼저 따라가겠다며 나섰다고 했다.

6일 김 군과 함께 냉천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최 군은 “오전 9시에 보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됐다. 계속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마지막 문자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빈소를 찾은 친구 정모 군(15)은 “노래방 가는 걸 참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 “형, 차 못 갖고 나가겠다” 마지막 전화
김 군보다 1분 먼저 발견된 서모 씨(22)는 올 3월 해병대에서 갓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었다. 서 씨는 독도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형이 두고 간 차를 물려받았는데 6일 이 차를 옮기러 지하주차장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서 씨의 어머니는 “차 포기하고 그냥 올라와”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들의 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 씨의 고모에 따르면 서 씨는 사망 직전 형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어 “형, 차를 못 갖고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독도의 기상이 악화되며 서 씨의 형이 동생의 빈소에 갈 수 없게 되자 경북경찰청은 독도에 헬기를 급파해 형을 데려왔다.

서 씨는 전역 후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성실함을 눈여겨본 회사 측이 이달부터 정직원 전환을 결정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해병대에서 함께 근무한 A 씨는 “힘들 때 끝까지 웃고 견디며 군 생활을 잘했던 친구였다”고 전했다.

이날 포항의료원에는 40년을 해로한 남모 씨(71)와 권모 씨(65) 부부의 빈소도 마련됐다. 빈소에선 노부부의 아홉 살 손자와 여섯 살 손녀가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살려내요!”라며 울음을 터뜨려 지켜보던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권 씨의 동생은 “화장실 두 개짜리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직 공사 중이라) 입주도 못 한 상태에서 이렇게 됐다”며 흐느꼈다.

일부 유족은 “막을 수 있었던, 정말 어이없는 사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 씨의 고모는 “관리사무소에서 ‘차를 빼라’고 방송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포항=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구조된 엄마#포항 지하주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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