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인 도장이 왜 없냐고” “천장에 의문의 구멍이…” 투표소 곳곳 소동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9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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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대구 남구청 민원실에 마련된 봉덕1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기표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대구 남구청 민원실에 마련된 봉덕1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기표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역대 최다인 34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시민들은 “코로나19로 불안해도 투표는 소중한 권리다. 꼭 투표해야 한다”며 투표소를 찾았다.

9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투표 시작 시간인 오전 6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긴 줄을 확인한 일부 시민은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 8시 양천구 시립청소년센터의 투표소에도 가족 단위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오면서 투표장 밖 도로까지 줄이 이어졌다.

경기 안양시에서 집 앞 투표소를 찾은 조아현 씨(26)는 “사전투표 때 줄이 길어서 오늘 다시 왔다”며 “개인적으로 두 번째 대선 투표인데 한 표를 꼭 행사하고 싶다”고 했다. 이모 씨(58·서울 강남구)도 “누가 되든 오늘 이후 국민이 합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표하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국 투표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면서 유권자들이 항의하는 일도 잇따랐다.

서울 강동구 상일 제1동 제6 투표소에서는 투표 시작 전인 오전 5시 53분부터 6시 38분까지 정전이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전기관리실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뒤 복구했다. 30여분 간 투표가 진행되지 못해 시민들이 혼란을 겪었다. 경찰 관계자는 “전력 과부화로 인한 정전이었다”고 밝혔다.

경기 하남시 신장2동 투표소에서는 50대 한 여성이 “도장이 옅게 찍혔다”며 투표지 교환을 요구했다가 이를 거부당하자 투표지를 찢어 버리고 현장을 떠났다. 투표지는 무효 처리 됐다. 수원 정자2동 투표소에서는 투표지에 참관인 도장이 없다는 이유로, 성남 분당구의 한 투표소에서는 선거참관인 수가 적다는 이유로 일부 유권자들이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전 11시 40분경 수원시 권선구 곡선중학교 제5투표소에서는 기표소 안에서 자신의 투표지를 촬영한 40대 여성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부산에서도 투표용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던 50대 여성이 적발되는 일이 있었다. 오전 6시20분경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A 씨가 투표하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로 투표지를 촬영했다가 경찰에 고발됐다. 비슷한 시간 북구 화명1동의 한 투표소에서 60대 남성 B 씨가 “천장에 뚫린 동전 크기의 구멍이 의심스럽다. 구멍 안에 카메라가 설치된 것이 아니냐”며 현장에 있던 투표사무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선관위가 종이와 테이프로 해당 부분을 막은 뒤 다시 투표가 진행됐다.

대구에서도 한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지를 들고 투표소를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오전 6시 반분경 남구 대명동의 한 투표소에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C 씨가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소 밖으로 나갔다. C 씨는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현장 투표사무원에게 교환을 요구했는데, 이를 거절 당하자 이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투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주변 폐쇄회로(CC)TV를 통해 C 씨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 지역 산불 이재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힘든 상황에서도 이른 시간부터 투표를 찾았다. 오전 8시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 앞은 선관위가 마련한 버스를 타고 투표소로 향하려는 21명의 이재민들로 북적였다. 박금자 씨(68)는 “산불로 집이 다 타버리고 몸은 힘들지만 투표는 해야지”라며 신분증을 챙겼다. 아침밥을 먹던 남정희 씨(77)는 “좋은 사람을 뽑아야 나라가 잘되지 않겠느냐”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신분증이 불에 탔거나 대피 과정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이재민들은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전남중 씨(81)는 “산불이 났을 때 부랴부랴 몸만 피하느라 집도 신분증도 다 타버렸다”며 종이로 된 임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교통사고로 불편한 한쪽 다리를 이끌고 투표소에 나선 이재민 홍중표 씨(63)는 “이웃들 도움을 받아 투표하러 왔다. 대피소 생활로 몸이 지쳤지만,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새 대통령이 이재민들을 잘 보듬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선거 전날인 8일 ‘북한 선박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건이 발생한 서해 최북단 섬 인천 백령도에서는 큰 동요 없이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됐다. 약 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백령도에는 9일 오전 6시 4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투표가 시작됐다. 오전 6시 투표소를 찾은 백령도 주민 김모 씨(48)는 “다음 대통령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백령도의 의료 인프라를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효신 씨(58)는 “북한 선박이 백령도 인근 NLL을 넘어 나포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날 확진·격리자 투표는 오후 6시부터 7시 반까지 진행된다. 투표 시간을 제외한 투표 방식은 일반 유권자와 동일하며, 정식 기표소에서 투표한 뒤 직접 투표함에 기표한 투표지를 넣는다. 사전투표 당시 임시 기표소에서 기표한 투표지를 투표사무원에게 넘기도록 해 전례 없는 혼란이 발생하면서 이같이 변경됐다. 하지만 9일 코로나 확진자가 역대 최다인 34만 명에 육박하면서 혼란이 재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울진=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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