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나라로 가” 트라우마 겪는 이주노동자…여전한 소수자 차별

뉴스1 입력 2021-11-25 10:06수정 2021-11-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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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열흘동안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와 김용균재단 등을 경유해 국회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없음)2021.8.30/뉴스1 © News1
#지난 1월 경기도의 한 가죽공장에서는 보일러가 폭발해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 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무릉씨(가명)는 눈앞에서 이 장면을 목격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사업장을 옮기려 했으나 고용허가제 대상이란 이유로 사장의 허락을 받지 못해 옮기지 못했다. 오히려 “너희 나라로 돌아갈래”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이주노동자단체의 도움을 받아 6개월 만에 겨우 사업장을 옮겼다.

#시각장애인 곽난희씨는 출근길마다 곤욕을 치른다. 버스가 멈추면 기사님에게 “몇 번 버스냐”고 묻고, 원하는 버스를 타도 카드 찍는 단말기 위치가 모두 달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릴 때도 벨의 위치가 달라 일일이 손으로 찾다 보니 다른 승객의 얼굴을 만져 난감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2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일상을 살아가는 소수자들은 각기 다른 차별을 여전히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20년 전인 2001년 11월25일 탄생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핵심 업무로 인권 정책을 권고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국가인권법에 따르면 인권위는 인권의 보호 향상을 위해 관계기관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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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권위는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총 993건의 인권정책 권고를 해왔다. 정책 권고에 대한 정부기관의 권고수용률은 86.4%였다.

문제는 정책 권고에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2011년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외국인근로자 사업장변경 사유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외국인근로자가 인권침해를 당해도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없던 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해결된 건 없었다. 무릉씨 같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고용센터나 외국인상담센터에서는 사업자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권고가 수용된다고 해도 차별이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인권위는 지난 2011년 서울시를 상대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해 시각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버스운행정보를 확인하도록 편의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서울시는 버스정보안내 단말기 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많은 버스에는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하는 단말기가 없으며, 신형버스가 나오면서 카드 단말기 등의 위치도 제각각인 상황이다.

곽난희씨는 “인권위의 권고가 전체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며 “편안하게 버스를 탈 수 있는 세상은 안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개별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현재도 있지만 이는 너무 추상적이고 집행력을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현행법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많다”며 “이런 부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그러나 현재 계류된 상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 국회에 처음 제출된 이후로 지금까지 11번 발의됐다. 지난해 6월29일 정의당과 일부 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공동 발의한 후 여당 의원들이 3개의 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또한 지난 6월 1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국민동의청원에 서명하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청원 내용을 심사하게 됐지만, 법사위가 청원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종료일인 2024년 5월로 연장했다.

법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가 지난해 4월 리얼미터에 의뢰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88.5%가 차별 금지 법률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인권위법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권위법에는 간접 차별이 명시돼 있지 않고, 괴롭힘이나 차별을 조장하는 광고 등도 조사 대상에서 빠져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 명의로 지난 10일 낸 성명에는 “21대 국회가 지금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절차를 조속히 진행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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