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깁스 한 채 무료로 세탁 해준 빨래방 주인…‘마음까지 뽀송뽀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2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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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다리 이끌고 수해 봉사활동 전남 곡성군 곡성읍의 한 셀프 빨래방 주인 정주희 씨(35)가 13일 이재민들에게 무료 세탁을 해주고 있다. 정 씨는 21일 빨래방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재민 돕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아픈 다리 이끌고 수해 봉사활동 전남 곡성군 곡성읍의 한 셀프 빨래방 주인 정주희 씨(35)가 13일 이재민들에게 무료 세탁을 해주고 있다. 정 씨는 21일 빨래방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재민 돕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13일 오후 2시 전남 곡성군 곡성읍의 한 셀프빨래방. 왼쪽 다리를 깁스한 주인 정주희 씨(35)가 이불 세탁이 한창이다. 목발에 의지한 채 뒤뚱뒤뚱 걸으며 이불을 ‘팡팡’ 털어내는 모습이 신기한 지 동네 꼬마들이 멀뚱멀뚱 쳐다본다.

주인 정 씨는 원래 21일 빨래방을 개업할 예정이었다. 두 달 전 출입문에 다리가 끼면서 근육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개업 날이 얼마남지 않아 대형 세탁기도 들이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8일 곡성에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재민이 속출했다. 정 씨도 비 피해를 입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이웃들의 빨래를 해주고 있다.

정 씨는 흙탕물에 젖어 색이 변한 이불이며 옷가지를 가져디가 초벌 빨래를 한 다음 세탁기에 넣어 한참을 돌린다. 건조까지 하면 누랬던 빨래는 금새 새것처럼 뽀송뽀송해 진다 하루 평균 6~7가구의 빨래를 이렇게 빨아준다.

주민들에겐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읍내에서 7㎞ 정도 떨어진 신리에서 트럭 째 옷을 싣고 온 50대 주부는 “집에서 물로 옷을 먼저 씻어 흙을 빼고 왔다”며 “무료 세탁을 해줘서 복구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정 씨도 힘은 두 배로 들지만 마음만은 편하다고 했다. “남원에 사는 아버지도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 빨래 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빨래방을 하는 입장에서 차마 못 본 척 할 수 없어 무료로 세탁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섬진강이 넘치면서 구례군과 곡성군에 2300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일부지역은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아 당장 먹을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흙더미에 빠져있던 가재도구는 대충 씻어서 햇빛에 말리고 있다. 구례군에서 가구당 식수 1상자씩을 줬지만 당장 입을 옷이나 이불을 빤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국 4개 자원봉사단체에서 이동세탁차량 9대와 급식차량 1대를 투입해 구례군 주민들을 돕고 있다. 피아골에서 펜션을 하는 김유진 씨(43·여)는 “순식간에 집이 물에 잠기면서 옷가지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이동빨래방 차량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부산적십자 관계자는 “침수된 이불과 옷은 흙을 발로 밟아 제거한 뒤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시장 상인들이 아침에는 세탁을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곡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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