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시마감 70일 앞두고 “학생부서 학교명 지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교육부, 대입 공정성 강화한다며 ‘블라인드 처리’ 일선 고교에 지시
高3 45만명의 1, 2학년 기록… 일일이 수작업으로 고쳐야할 상황
담임들 “등교 연기돼 상담도 바쁜데 언제 학생부까지 고치나” 난감

사진 동아DB
사진 동아DB
전국 고3 담임교사들이 수시모집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마감을 두 달여 앞두고 재학생 45만 명의 1, 2학년 학생부에서 학교명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지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교육부가 최근 일선 고교에 이런 지침을 담은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를 위한 학생부 정정 방법 안내’ 공문을 보낸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교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사일정이 연기돼 수시모집 준비에 몰두하기에도 바쁜데 학생부까지 수정해야 한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올해부터 대학에 보내는 학생부에서 학교 정보를 블라인드 처리하기로 했다. 학생부는 ‘나이스(NEIS)’라고 불리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입력된다. 당초 교육부는 블라인드 방침을 세운 뒤 한글이나 엑셀처럼 나이스에서도 학교명을 검색해서 한 번에 바꾸는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했다. 그러나 서술형(정성평가)으로 쓰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삭제했다가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뒤늦게 일선 고교에 수작업 정정 지침을 내린 것이다. 정정 기한은 수시 학생부 작성 마감일인 9월 16일까지다.

교육부 공문에 따르면 고3 담임은 재학생의 1, 2학년 학생부에서 △수상명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학교명이 들어간 것을 일일이 찾아 ‘교내’ 또는 ‘OO’으로 정정해야 한다. 학교명이 아니어도 별칭 등 학교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것까지 모두 수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명이 장백산인 경우 수상명이 ‘장백산고 토론한마당’이라면 ‘교내 토론한마당’, 창체에 ‘장백골 축제에서’라고 돼 있는 것은 ‘교내 축제에서’, 행특에 ‘음악에 조예가 깊어 장백산 그룹사운드의 일원으로 축하공연을 함’이라고 돼 있는 것은 ‘… 교내 그룹사운드의…’ 식으로 일일이 바꿔야 한다. ‘수락산 자락에 있는 명문고’라는 표현은 지역으로 학교를 유추할 수 있기에 아예 다른 표현으로 교체해야 한다.

학교명 수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고3 담임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마다 수정한 항목별로 학생부 정정 대장도 작성해 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교육부가 학생부 무단 수정을 막기 위해 한 학년도가 지나면 정정을 까다롭게 해두었기 때문이다. 서울 A고 교사는 “모든 학생의 1, 2학년 학생부를 프린트해 학교 정보가 유추되는 곳을 찾아 표시하고 전산에서 바꾸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엄청난 과제가 떨어졌다는 반응이다. 경기 B고 교사는 “매일 시간을 쪼개 등교 연기 때문에 늦어진 상담을 하고 매 시간 복도와 화장실, 급식실에서 방역지도를 하느라 바쁘다”며 “수시 지원 상담을 하면서 자기소개서도 봐줘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학생부 수정 지시는 엄청난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C고 교사는 “학생이 강남노인복지관에서 봉사를 했는데 이런 지역 명칭도 학교 명칭을 유추할 수 있다고 보고 지워야 하는 건지 모호해 수정 작업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김수연 기자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마감#수시모집 준비#대입제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