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기 위해 총을 들었다”…재조명 받는 ‘루프탑 코리안’[청계천 옆 사진관]

송은석 기자 입력 2020-06-07 09:37수정 2020-06-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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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민들이 폭도들에 맞서기 위해 포크리프트 뒤에서 권총을 들고 있다. ⓒ강형원 사진기자


백인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흑인 용의자를 무릎으로 목을 짓눌러 사망케 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일부 과격 시위대의 약탈과 절도 행각으로 피해를 입는 상점들이 생기자 지난 92년의 한국인들에 대한 추억이 다시 소환됐습니다.


바로 ‘Rooftop Korean’(지붕위의 한국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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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안관이 자동차 앞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옥상에 루프탑 코리안들이 보인다. ⓒ강형원 사진기자


‘루프탑 코리안’은 1992년 이른바 ‘로드니 킹 사건’으로 흑인들이 LA에서 폭동을 일으켰을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쥐고 옥상 위로 올라갔던 한인 교민들을 지칭합니다.

L.A는 상류층 백인들이 살던 비버리힐스 쪽에 공권력을 집중시켰기에 폭도들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했던 한인 타운으로 몰려들어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폭도들이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군필자’라는 것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부지런히 살아온 한국 남자 교민들은 스스로 재산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리차드 리 씨가 폭도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고 있다. 격발 후 날아가는 탄피가 보인다. ⓒ강형원 사진기자

흰 띠를 머리에 맨 루프탑 코리안들이 옥상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출처 불명


이들은 AM 라디오를 통해 피해 상황을 주고받았으며 1층에는 자동차로, 옥상에는 모래주머니로 벙커를 만들고 피아식별을 위해 흰 끈을 머리에 맸습니다.

당시 한국 교민들은 월남전, 한국전쟁 참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24시간 교대 근무를 서는 등 군대처럼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했습니다.

한 한국 교민이 권총을 들고 한인 타운 앞에 서 있다. 교민 너머로 불타느 상점을 진화중인 소방차가 당시 심각성을 보여준다. ⓒ출처 불명
샷건을 든 두 루프탑 코리안이 옥상 위에서 교대 근무를 서고 있다. ⓒ출처 불명
한인 타운의 한 상점가가 방화로 불에 타고 있다. ⓒ강형원 사진기자


미국 언론에서 이런 모습이 방영되자 폭도들의 한인 타운 침입은 점차 줄어들었고 상황 진정을 위해 뒤늦게 한인 타운에도 주 방위군이 들어선 뒤에야 비로소 ‘루프탑 코리안’들도 총을 거두고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최근 SNS에 이러한 ‘루프탑 코리안’이란 단어가 ‘스스로를 지키자’는 ‘밈’(유행어)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소셜미디어에 당시 촬영된 사진과 함께 “우리도 루프탑 코리안이 되자”, “루프탑 코리안을 존경한다” 등의 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재 시위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미국인이 많다는 뜻입니다. 한인 커뮤니티는 이러한 현상에 조심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분노의 화살을 동양인에게 돌릴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2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 내 인종 차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출처 없이 돌아다니던 위 사진들은 LA 폭동 당시 생생한 현장 보도로 93년 스폿뉴스보도부분을 수상했던 강형원 사진기자의 사진입니다. 이후 강 기자는 AP워싱턴지국 사진부장으로 활동하던 99년에 지국의 사진기자 16명 등 100여명을 동원,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관련된 취재를 진행했고 이후 이와 관련된 사진 20장을 공개하면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진은 강형원 사진기자 홈페이지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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