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돌며 치료” 만병통치약 홍보…줄기세포 약,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2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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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처
유튜브 캡처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42)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먹는 줄기세포 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솔깃해졌다. 줄기세포가 담긴 캡슐을 먹으면 줄기세포가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을 치료해줘 건강을 되찾아준다는 것이었다. 한 달 분량이 50만 원에 육박했지만 김 씨는 올겨울 건강이 부쩍 나빠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구입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나 유튜브에 먹는 줄기세포 알약 광고(사진) 노출이 부쩍 늘면서 노년층 사이에 줄기세포 알약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학적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줄기세포를 소화기관으로 흡수하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먹는 줄기세포 약 제품들은 줄기세포 수집 과정을 ‘사슴 태반 추출 줄기세포’ ‘줄기세포 은행’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원산지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로 한 달 분량이 20만∼50만 원대에 팔리고 있다. 이 제품들은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면역능력을 활성화하고 활성산소 제거능력이 탁월하다”며 만병통치약으로 과장 광고되고 있다. 판매업자들은 “줄기세포 주사 비용은 1000만 원 이상이어서 서민들에게 그림의 떡이지만 이 제품을 먹으면 각종 성장인자들의 세포분열을 촉진하고 자율신경계·내분비계를 조절한다”며 구매를 권유한다. 또 캡슐 안에 들어있는 줄기세포가 소장까지 전달돼 소장의 융모를 통해 흡수된다며 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까지의 과학기술로는 ‘먹는’ 줄기세포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줄기세포를 먹으면 고기를 먹는 것처럼 소화기관이 단백질로 받아들이고 분해해 줄기세포 효능 측면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오일환 가톨릭대 의과대학 기능성세포치료센터 소장(의생명과학교실 교수)은 “먹는 줄기세포는 연구된 바 없고 과학적 타당성이 떨어져 앞으로 연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줄기세포가 캡슐 안에 보관돼 유통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줄기세포 치료는 액체질소를 이용한 초저온 상태에서 줄기세포를 보관하다가 사용 전에 이를 녹여 줄기세포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주사기 등으로 바로 인체의 혈관에 직접 투입하거나 장기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줄기세포학회 관계자는 “살아있는 줄기세포를 알약 제형으로 만드는 것은 현재까지 연구로는 불가능하다”며 “혈액으로 투여하는 게 아닌, 소화관으로 들어가면 사실상 우유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제품들에 대해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하려면 식약처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체 적용 시험을 진행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야 건강기능식품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해외 제품은 광고만 보고 구매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건강기능식품’ 마크가 있는지, 주성분이 어떤 것인지 확인한 뒤 구입을 결정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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