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행위 원천 차단할 시스템… 이재용의 ‘준법 프로그램’ 준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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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美연방 양형기준’ 제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기준 요구
삼성, 내달 17일 공판 앞두고 논의… 국내 다른 기업에도 확산될 듯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의 10개 사업 분야별 대표 계열사 사장 10여 명이 17일 모여 준법감시 체제 구축에 나선 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 일정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내년 1월 17일이 다음 재판 기일이어서 삼성으로서는 한 달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앞서 정 부장판사는 10월 25일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언급하면서 실효적 준법감시 제도 마련 등을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당시 “삼성 내부에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과 같은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과 그에 따른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하기 바란다”고 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미국의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의 위법 행위를 억제할 장치를 만들어 범죄 행위를 방지하고 감지하며 보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해 존폐의 위기에 처할 정도의 벌금을 설정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실효적인 감시체제를 만들 수밖에 없고, 재판부는 이를 철저히 검증하게 된다. 본보가 입수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에 따르면 기업이 실효적이고 진정성 있는 ‘준법감시 및 윤리프로그램(compliance and ethics program)’을 구축할 경우 재판부가 형량을 줄여줄 수 있다.

이 기준은 1991년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가 연방법상의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양형을 정할 때 연방 판사가 참고할 기준인 ‘기업에 대한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SGO)’을 제정해 의회에 제출하며 생겨났다. 제8장에 명시된 FSGO는 기업이 유죄로 확정된 경우, 감형을 받기 위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기업에 대한 최종적 처벌을 감경하는 두 요소는 첫째 자율 준수 및 윤리프로그램의 존재, 둘째 자기보고(self-reporting)와 협업, 책임 인정이다. 이 중 자율 준수 및 윤리프로그램이 바로 이 사건 재판부가 명시한 준법감시 체제다.

삼성의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인 것은 각 사업 분야별 특수한 환경에 맞게 일상적인 감시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삼성이 형식적인 준법감시 체제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무조건적으로 감형을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참고하라고 한 제8장은 구체적이면서도 실효적인 체제를 요구하며, 이를 평가할 기준도 세세히 갖추고 있다. 제8장에 따르면 준법감시 체제에는 △범죄행위 방지를 위한 기준 및 절차 △효과적 훈련 프로그램 실시 △정기 평가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 △인센티브와 제재 등이 요구된다.

삼성이 새 준법감시 체제를 마련하면 다른 대기업들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박상준 speakup@donga.com·김현수 기자
#삼성전자#준법감시 체제 구축#이재용 부회장#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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