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논란에…강남 유명 입시학원 앞 ‘밤샘 줄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4일 20시 57분


코멘트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줄 서기 가능한가요? 30일 오전 9시에 번호표 주니까 전날 저녁부터 서야 할 것 같은데….”

줄서기 대행업체 A사에는 요즘 이런 전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 달 시작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유명 입시학원들의 겨울강좌 등록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앞 다퉈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줄서기 대행은 돈을 받고 티켓이나 제품 구매, 식당 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다. 학원 신청 대행은 시간당 2만 원 정도다.

대치동 B학원은 토요일인 이달 30일 오전 9시에 번호표를 나눠주고 10시부터 선착순 등록을 받는다. A사는 이 학원에 등록하려는 학부모들로부터 전날 오후 5시부터 밤새 줄을 서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는데 줄을 설 직원이 모자랄 정도로 수요가 많다. 줄서기 대행 알바는 보통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은 뒤 학부모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체 관계자는 “그날 우리 직원 전부가 B학원 앞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첨단의 시대에 학원 등록을 위해 밤새 줄을 서고 대행업체까지 등장한 건 상당수 인기 학원들이 ‘오프라인’ 등록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원들은 ‘불공정 논란보다는 불편이 낫다’며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신청 대신 현장 등록을 고집하고 있다. B학원 측은 “인터넷 등록은 신청 폭주로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입금자 순으로 등록하면 초단위로 탈락하는 인원이 많다”며 “입학 절차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보다는 불편한 게 차라리 낫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일대에는 ‘학원 수요’가 많다 보니 등록 시즌에만 집중적으로 줄 서기 알바를 하는 ‘프리랜서’도 생겨났다. 여름방학을 앞둔 올 6월 C 씨는 B학원의 등록을 위한 줄 서기 대행을 했다. 당시 B학원이 있는 건물 입구에서 대기 줄이 100m 가까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줄서기 대행 알바는 장시간 앉아 기다려야 하는 탓에 휴대용 방석 준비는 필수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롱패딩과 모자, 핫팩으로 중무장을 한다. C 씨는 29일에도 오후 5시부터 B학원 앞에서 대기할 계획이다. 친구 2명도 다른 고객의 부탁을 받고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16시간을 서주고 시간당 2만 원을 받는데 이들 3명 모두 예약이 다 찼다. C 씨는 29일 오전에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어학원) 등록을 위한 줄 서기도 예약돼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줄 서기 전쟁’은 등록 뒤에도 끝이 아니다. 인기 높은 이른바 ‘일타’ 강사의 강의는 매번 시작 5, 6시간 전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린다. 수백 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이라 뒤쪽에 앉으면 집중이 어렵기 때문에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강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때도 자녀 대신 나서는 학부모들이 많다. 대치동의 한 이름 난 입시학원은 오전 7시에 강의실 입장 번호표를 배부한다. 유명 강사 강의가 있을 때는 학부모들이 오전 2, 3시부터 줄을 서 번호표를 받고 강의실에 들어간 뒤 책상 위에 아이 이름을 써놓고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입시학원 등록 때 줄서기 대용으로 가방을 놓기도 했다. 이른바 ‘가방줄’이다. 그러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원들이 무조건 현장에서 기다려야 등록을 받아주고 있다. 한 학부모는 “솔직히 학원이 갑질 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아마 (대입) 정시가 확대된다면 학원 등록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밤새 줄 서는 게 너무 힘들지만 아이가 그 강의를 꼭 듣고 싶어 한다”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밤샘 줄서기#강남 학원#입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