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면서 중국음식 시키더라”…‘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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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8일 2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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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법원종합청사 현판.© News1
부산법원종합청사 현판.© News1
“(고문) 당시 파티하듯 중국음식을 시켜놓고 술을 마셨다.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도 중국 음식점을 못 간다.”

수사 경찰관들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해 21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한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재심 재판에 같은 경찰서 소속 경찰관으로부터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남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18일 부산고법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장모씨(61), 최모씨(58)의 재심 청구 3차 공판에서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수사한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비슷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남성 증인으로 나왔다.

A씨는 1991년 9월 사하경찰서에 붙잡힌 뒤 강도상해범의 공범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 그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 (법정에) 오지 않으려고 했으나, 두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추석을 맞아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해 부산을 찾은 A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강도상해를 공모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별관 강력계 사무실로 끌려가 경찰 4~5명이 물고문을 했다”며 “당시 경찰관들은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웃통을 벗은 채 중국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덩치 큰 경찰관 여러명이 고문을 하는 모습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며 “징역살이를 해도 좋으니 여기서 무사히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강도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범인이 아니다”는 피해자의 진술 덕에 무죄로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그동안 증인 소환에 응하지 않았던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 경찰관 B씨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사건을 처음으로 인지하고 최씨 등을 검거했다는 B씨는 앞서 공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경찰관과 동일하게 고문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B씨는 “당시 최씨만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적이 1건 있었고, 장씨는 어떠한 범죄전력도 없는 상태였다”며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나 고문 등의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묘사하며 고문 여부에 대해 묻는 재심 청구인과 변호인의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답했다.

그는 오히려 “공무원 사칭 혐의로 검거한 최씨가 스스로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며 “나는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은 1990년 1월4일 부산 북구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상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고 함께 있던 남성은 격투 끝에 도망친 사건이다.

사건 발생 1년10개월이 지난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유원지 공터에서 무면허 운전교습 중 경찰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금전을 갈취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최씨 등을 검거했다. 사하경찰서는 두 사람을 구속해 수사하던 중 최씨와 장씨로부터 살인사건에 대한 자백을 받고 부산지검으로 송치했다.

최씨 등 2명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경찰에서 조사된 내용을 보완해 두 사람을 기소했다. 두 사람은 무기징역이 확정돼 21년 이상 복역하다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석방됐다.

한편 과거사위는 앞서 지난 4월 “두 사람의 고문 피해 주장은 일관되며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과 부합하고 신빙성이 있다”며 경찰의 고문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심의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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