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흉기난동 신고했지만…경찰 “누가 신고했냐” 부실 대응 논란

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워 위협을 느낀 다른 승객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출동한 경찰이 "누가 신고했냐"고 물어보고 별다른 조치 없이 철수해 논란이다.

20일 경찰과 신고자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커터칼을 꺼나 수차례 허공에 휘둘렀다.

이 남성은 다른 승객들을 향해 "가까이 오지마"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A 씨가 이 모습을 보고 "파란 패딩을 남자가 욕설을 하며 커터칼을 들고 있습니다"라고 112에 신고했다. 신고 접수가 완료됐다는 문자에 A 씨는 "저희가 신고한 거 모르게 해주세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A 씨는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이 버스에 타 '신고자 계십니까'라며 큰소리로 외쳤다"라며 "해당 남성이 자리를 이동해 제 옆자리에 앉아 대답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신고자를 찾지 못한 경찰이 버스에서 내리자 A 씨는 곧바로 따라갔고, 자신이 신고자임을 밝혔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파란 패딩을 입은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하지만 경찰은 간단히 신원 확인만 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에 A 씨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공개적으로 신고자부터 찾아 두려움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찰은 112 신고 문자 통신 오류로 '흉기를 들고 있다'는 문자 내용이 현장 경찰관에게 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측은 A 씨의 신고 내용 중 '커터칼을 들고 있다'는 뒷부분이 누락된 채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이라고만 전달됐다고 밝혔다.

또 첫 신고 이후 A 씨가 '우리가 신고한 걸 모르게 해 달라'라고 보낸 문자도 현장 경찰관들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에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동했다면 현장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등 대응이 달랐을 것이다. 신고자가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지 않았고 단순 시비로 알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칼이 있다'는 말만으로는 임의동행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해당 남성을 돌려보냈다"고 해명했다.

김소정 동아닷컴 기자 toy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