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 태움이 뭐기에…靑 청원 내용 ‘참담’

  • 동아닷컴
  • 입력 2018년 2월 19일 10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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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던 20대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가운데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관련 청원 글이 등장해 많은 이의 추천을 얻고 있다.

18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15일 오전 10시 30분경 간호사 A 씨(28·여)가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 씨가 아파트 고층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A 씨의 남자친구가 병원에서 선배·동료 간호사들로부터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이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소식이 전해진 뒤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문재인 대통령님 간호사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19일 오전 10시 30분 현재 9900명의 추천을 받았다.


청원자는 “평창올림픽에, 설날…모든 국민들이 명절과 축제의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을 때,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그 분은 죽기 전까지 격무에 시달리며 병원 일에 대한 중압감으로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환자실은 늘 인력이 부족하다. 간호사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며 혹여나 실수할까 노심초사하며, 내 실수로 환자가 잘못 될까봐 두려움과 압박감 속에 일을 한다”면서 “올림픽에서 실수를 하면 땀 흘린 4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실수를 하면 최소 1명(환자), 혹은 2명(환자, 간호사)의 인생이 위태로워진다. 그곳이 생명을 다루는 곳이라면 발생 가능한 어떤 실수라도 그것에 대해 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중환자실은, 소위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곳에서조차 충분한 간호사 인력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선수들은 만전을 기해 준비한다. 그러나 중환자실은 금메달만큼 귀하고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곳이지만 만전은커녕,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규 간호사를 오랜 경력의 간호사와 똑같은 수의 환자를 담당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제발 간호사들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밀어내지 마시라”면서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 1명당 1명의 환자만 담당하게 해 달라. 고통스러워하며 나를 부르는 환자에게 ‘잠시만요, 죄송해요. 당신도 위중하지만 저쪽 환자가 더 심각하거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같은 날 A 씨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원 글도 올라왔다. 현재까지 4916명의 추천을 받았다. 청원인은 A 씨가 ‘태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는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가르치며 폭언이나 폭행을 하는 악습이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태움’으로 불린다. ‘태움’은 2005, 2006년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2명이 연이어 목숨을 끊은 뒤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한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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